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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Sep 02. 2020

착한 직원도 상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표현의 자유와 묵비권의 반납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 치의 숨김없이 속마음을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느낀 그대로, 마음속 품은 그대로의 생각을 쏟아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면, 쌓인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혼자 속 태우며 괜한 곳에 화풀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하는데”란 말이 있다.

요즈음은 중간을 해도 살아남기 힘든 세상입니다만.

이 말처럼, 허튼짓 뻘짓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면 가정의 경제가 자연스럽게 중산층에 진입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금은, 중산층의 개념도 모호하고 진입하기도 어렵지만 머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산층의 기준이 신체의 중간 정도 볼록 튀어나온 배가 기준인지, 그놈의 통계상으로는 매일 중산층이고,

갖은 애를 써도 중산층 문턱 구경도 못 하고 꺾이는 무릎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나라 헌법에 묵비권이란 것이 있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자기에게 이익 불이익을 불문하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되어있다.

반대로, 아무런 억압 없이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 주장 따위를 나타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도 있다.


법적으로 보장된 묵비권도 있고 표현의 자유도 있는데, 왜 하루하루가 답답할까.     

 

직장에서는 업무 회의를 자주 한다.

아주 알차게 친구들과 이야기하듯이 업무회의를 하는 직장이 많아졌다는 소문이 나돈다.

부디, 찌라시가 아니기를 바란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말이 회의지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가 많았었다.

토론 문화의 정착과 좋은 의견 공유를 위장한 가장 재미없는 상사의 일인 토크 쇼이다.

자기 자랑이 병적으로 심한 상사는 회의를 자주 하고 회의 시간도 대체로 길어진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져 업무를 넘어 사회 정치적 이슈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남의 의견 따위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기 말을 어떻게 잘 포장할지에 신경을 쓴다.

 자기 말에 자기가 심취해 직원들이 건성으로 듣고 있는 것도 모른다.


또, 신임 이사장의 핵심 추진사항이나 비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을 한다. 

새로운 이사장이 올 때마다 내용은 별반 차이가 없고 거창하게 말만 바뀐다.

직장이란 단어가 생길 때부터 직원 간의 원활한 소통은 단골 메뉴였다.

가정에서 좋은 가훈을 정했다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애들이 1등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바에야, 심플한 "차카게 살자"가 훨씬 낮다.


회의  중 혼자 말하기가 뻘쭘한지  "다른 의견 있는 분 말씀하세요" 하면,

대부분 직원은 의견이 없다고 한다.  없다는 것은 빨리 끝내자의 다른 표현이다.

어쩌다, 눈치 없는 신입이 갖은 용기를 내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들어줄 만한 그릇이 되는가를 먼저 판단해야 하는데...)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신입이 용기 있게 내놓은 의견을 노르망디나 인천 상륙 작전하듯이, 신입의 머리를 초토화해 놓는다. 한동안 신입은  어떤 회의에서든 입을  다물 것이다.


그런 날은, 상처 준 놈은 웃으며 퇴근하고 나같이 착한 직장인은 신입을 데리고 술집을 옮겨 다니며 카드를 열심히 긋는다. 신입들은 법인카드인 줄 아는데, 지금 말하지만 내 개인 카드다.


설문조사를 하면 직원과의 소통이 안 된다는 상사는 한 명도 없다.

단지, 올바른 직장생활과 업무에 대해 참고될만한 말을 하는데 직원들의 사회성과 적응력 부족으로 돌린다.

이 문제는, 영원한 신입은 없고 언젠가 상사가 될 테니, 참고해서 착한 직원을 위한 착한 상사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덜떨어진 상사를 보고 있으면 속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 온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스트레스에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반차나 조퇴를 내고 회사를 탈출(?)한 적도 있었다.


어떨 때는 가장 약한 톤으로 반대 의견을 한마다 툭 던져 본다.

그러면 한 달간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골치 아픈 업무만 개밥그릇 차듯이 툭 던져 준다.

내가 먼저 찾아가서 손을 내밀면 되는데, 그마저도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자기를 따르는 직원들과의 술자리에서 하는 뒷담화는 필수적으로  들려온다.      

“저러니 진급을 못 하지”

“다음 인사 때 다른 팀으로 보내버려야지”     

물론, 덜떨어진 상사가 안 보내줘도 갈 준비를 미리 한다.

착한 직원도 상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애써 주장하면서,


직장에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자기 할 말 다 하고 살면 그 대가는 거대한 바윗덩어리로 덮친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제 할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나 보다.


묵비권도 마찬가지이다.

덜떨어진 상사의 얼굴도 보기 싫고 말도 섞기 싫은데, 꼭 옆에 다가와 일부러 말을 걸어온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도 싫어 묵비권을 행사하고 싶은데, 또 착한 직원들은 그러지를 못한다.

(착해도 너무 착해 걱정도 된다.)

제때 응대를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하면 덜떨어진 상사일수록 상대방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초감각적으로 눈치챈다. 덜떨어진 사람이 눈치라도 있어 천만다행입니다만.     


우리나라 법은 해석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라 묵비권과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버릇없는 놈,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 사회성이 떨어지는 놈으로 낙인찍혀 산다.


하고 싶은 말 못 하고 속으로 삭이는 묵비권의 행사가 왜 그리 많은지.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불이익은 왜 그리 많은지. 

표현의 자유와 묵비권을 가졌지만 제대로 사용도 못 하고, 신분증과 함께 조용히 반납하고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백 프로의 묵비권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사는 게 인생인가 보다.

부탁한다. 상사들은 착한 직원들 괴롭히지  말고, 우리 착한  직원들은 힘내시기를 바란다.

사회도 착한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고 직장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직장에서 못한 제안 여기서 하나 낼까 한다.


제안

1. 직장에서 오후 근무시간에는 야자 타임으로 근무하자, 어길 시는 월급의 30% 삭감- 제안 취소(노동자 임금  삭감은 나도 반대)

2. 직장에도 조선시대에 있었던 내시부를 만들자.

    덜떨어진 상사와 아부로 승부 거는 사람들을 내시부로 발령 내자.

    서로 동병상련의 아픔도 나누면서 ‘상사 비위 맞추기’ ‘아부와 아첨의 기원’ 등

     전문서적을 만들어 그들만의 내시 리그에서 후진양성에 힘썼으면 한다.

     

그러면, 내시부 장관 후보자도 청문회  참석 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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