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철 Aug 27. 2020

추상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시에서 추상어보다는 구체어 사용을 가르친다.

현실에서도 추상적인 말로 인해 시비가 자주 일어난다.

상대는 확실한 답을 요구하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무수히 많다.


채권자의 빚 독촉에 채무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갚겠다고 한다.

채무자로서는 ‘최대한’과 ‘빠른 시일’이 들어갔으니 아주 구체적인 답을 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최대한 빠른 시일이 언제까지인지 채권자도 채무자도 모른다는 것이다.

채권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채무자가, 심해 상어의 간처럼 잠수를 탔다가 십 년 뒤에 떠오를 것인지,

아니면, 야반도주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도망을 갈지, '최대한 빠른 시일'이 무한대의 또 다른 표현인지,

상상 속에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자주 확인하는 말.

“나 얼마나 사랑해?”

이 추상적인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의 오랜 숙제이고. 어떤 과학적 지식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이다. 풀 수 없는 문제라 해서 쉽게 넘어가려 하면 예기치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박사 학위 논문 통과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운 여름날 법원에 출두해 “3개월 후에 뵙겠습니다.”란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사람이 김장 김치는 아니지만 숙려기간인지 숙성기간인지, 왜 필요한지 알 것이다.

“나 얼마나 사랑해?”란 질문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하지만, 현명한 답도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사랑도 주식처럼 포토 플리오의 분산투자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꿈에서 깨어나기를 바란다.


그럼, 인간이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한다면 100이라 하면 좋아할까?

아니면, 1,000이라 하면 만족하고 믿어 줄까?

어차피 믿고 안 믿고는 당사자의 문제이지만, 오늘도 똑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수많은 남녀가 머리를 굴리고 있다. 추상적인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요구하는, 유치하기도 하지만 어떤 거짓말도 허용되는 말을 못 해 지금도 헤어지는 커플들이 있다.    


정말 미운 사람에게 하는 말,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져라!”

죽어서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져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란 말인데, 그러면 지옥의 불구덩이 온도는 몇 도일까? 100도일까? 1,000도일까? 아무도 모른다.

신의 영역이라 신만이 알 수 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불구덩이의 온도가 영상의 온도이지 영하의 온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온천욕을 즐길만한 온도는 더더욱 아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염라대왕이 그렇게 인간적이지 않다.

자기 직무에 만족하고 가장 충실한 사람이 염라대왕이다.

총선이나 대선도 없는 염라국의 종신 대통령이다.

불구덩이 온도를 낮추겠다는 선거 공약은 절대로 없다.


죄를 짓고 죽어 지옥 불구덩이에 떨어진 사람만이 알 수 있겠죠.

그러니, 죽지 않고 고통만 느끼는 온도 정도로 추측할 뿐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단순한 사실뿐이다.

지옥의 온도와 상관없이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그렇게 세월이 간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지만 추측 가능한 것으로 구분된다.

가을이 아름다운 사람, 겨울이 아름다운 사람,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움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추상적인 질문에 예민해지지 말고 정확하게 찾아오는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것이다.    


나는 언제쯤 집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 이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부와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 되어야 행복한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상태로 두고,

오늘은 오늘에, 내일은 내일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자는 것이다.     


삶에 대한 올바른 자세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가올 계절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행복이 내 안에 앉아,

어깨 위에 손을 얹고 잘 살아왔다고, 잘 견뎌왔다고, 말하겠지요.         

이전 03화 생애 첫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