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서 회원들과 여행을 가면 주로 회장님이나 연장자가 앉거나 아니면, 그 모임의 총무가 앉아 여행 일정을 총괄 지휘하는 게 일반적이다.
지인들과 ‘허둥지둥’이란 친목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명칭이 허둥지둥이지 사는 모습은 아등바등 에 가깝다.
여행 계획을 세밀하게 세워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마음 편안하게 발길 닿는 대로 떠나자는 뜻에서 만든 모임이다. 내가 아는 모임 중에 ‘혼수상태’도 있는데 그분들은 산행이 끝나면 말 그대로 ‘혼수상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신다고 한다. 내 생각에 ‘혼수상태’보다는 ‘허둥지둥’이 더 생산적이고 교양 있는 모임이라 생각한다.
모임에서 일 년에 한 번 이상 1박 2일 일정으로 국내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은 출발 인원이 다섯 명이다.
차량을 한 대로 가야 할지 두 대로 가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 벌어졌다.
유류비와 통행료 등 경비 절감의 차원에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승용차 한 대에 다섯 명이 타고 가기로 했다.
문제는,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는 사람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발도 마음도 마음대로 쭉 펼 수가 없다.
좌석 시트와 등받이가 약간 돌출되어 있어 엉덩이가 돌부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금방 피로감을 느낀다.
30분 이상 앉아 있으면 허리와 목도 아프다. 몸이 아프면 여행이 고행으로 변한다.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운전석 옆 조수석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자리다.
시야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없어 좌우 전면에 펼쳐지는 주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내심 조수석에 앉아가기를 누구나 원하지만, 서로 눈치를 살핀다.
그럴 때면 꼭 분위기 파악 못 하는 사람이 있다.
회장도 총무도 아니고 연장자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몸이 비대하지도 않은 회원이 조수석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아 “자 출발합시다!”를 외치는 눈치 없는 회원이 있다.
여행 일정과 경비를 총괄하는 총무가 조수석에 앉는 것이 묵시적인 약속이고 관례인데,
서열상 뒤에서 2번째인 개념 없는 회원이 조수석에 앉아 출발을 외친다.
그렇다고, 좋은 취지로 떠나는 여행에 멱살을 잡고 끄집어낼 수도 없다.
나머지 셋 사람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이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기로 하고 출발한다.
뒷좌석의 세 사람이 전깃줄에 앉아 있는 참새처럼 보인다.
서로 어깨 맞대고 바나나 껍질을 벗겨 먹는 모습이 동물원에서 많이 본 듯한 그림이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의외로 많다.
운전자의 졸음 방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또, 내비게이션 조작, 히터나 에어컨의 ON OFF,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한 전방 주시, 다음 휴게소까지 걸리는 시간 공지, 상황에 따라 운전자의 휴대전화까지 받아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속도 방지 턱을 지난다고 알려 주지만 그래도 뒷좌석 사람들을 위해 육성으로 한 번 더 알려 주는 게 예의다. 그런데, 조수석에 앉은 회원이 시골의 경치에 빠져 알려주지 않았고 운전자도 속도 방지 턱을 미처 보지 못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통과했다.
뒷좌석의 중간에 앉은 회원이 무방비 상태에서 ‘쿵’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차 천정에 머리가 부딪쳤다.
공교롭게 그분이 대머리 회원이다.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머리숱이 많은 사람보다 숱이 없는 사람이 부딪치면 충격이 더 크다.
여기서 충격은 정신적인 충격도 포함될 것이다.
또 한 분은 들고 있던 음료수를 쏟았다.
휴지를 찾고 뒷좌석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는 나지만, 회칙에 회원 상호 간의 돈독한 친목 도모가 목적으로 되어 있어 참아야 한다.
어느 모임이든 회칙을 지키지 않으면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회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운전자가 좌회전 지점을 놓치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뜨거운 고구마를 입에 넣은 사람처럼 손사래를 치며 호들갑을 떤다. 운전자가 적잖게 당황했고 차가 갈 지자로 흔들렸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이 정도 되면 회원들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조수석 회원을 탄핵 처리하면 안 된다.
우정으로 출발한 여행이 불신으로 마무리될 수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
그래서, 조수석에 앉은 회원한테 점심을 먹기 위한 식당 선택권을 만장일치로 부여했다.
멸치 쌈밥 전문 식당에서 1인분에 15,000원 하는 멸치 쌈밥을 시켰다.
주인공은 멸치인데 2인분에 들어 있는 멸치는 10마리도 안 된다.
그것도,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수용소에서 잡아 온 멸치인지 살은 없고 뼈만 있다.
멸치 대가리와 뼈를 얹은 상추쌈을 처음 먹어 보았다.
국물도 그냥 맹물에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풀어놓은 수준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멸치 쌈밥은 아니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먹었다.
그 맛없는 멸치쌈밥에 75,000원과 술과 음료수 값을 합쳐 100,000원을 지불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음식값이 조금 비싸지만 맛은 그런대로 괜찮다.
간혹, 음식값도 비싸고 맛도 없다면 그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상당히 오랜 간다.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맛없는 어느 식당, 어느 지역이 주 화젯거리가 되기도 한다.
관광지와 음식점이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식당 주차장에 모여 식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오간다.
그 책임을 조수석에 앉은 회원이 지기로 하고 뒷좌석의 중간 자리로 이동시키는 걸로 매듭을 짓는다.
그런데, 아주 맛있는 멸치쌈밥을 먹었다 하더라도 안전을 위해 다른 이유를 들어 교체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