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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철 Aug 25. 2020

조금 늦더라도, 마음만 있으면,

희망의 씨앗을 놓지 말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밟혀본 사람은 압니다.

의학적으로 말하면, 지렁이는 밟히면 치명적인 중상 아니면 사망입니다.

결론은, 밟혀 본 지렁이는 절대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아마, 말할 기회도 없을 겁니다.     


현대사회는 속도가 인간성을 짓밟고 지나갑니다.  

세계화, 경쟁력, 혁신이라는 포장된 구호를 앞세워 우리를 틀 속에 가둬 놓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합법을 가장한 구조조정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거리로 내몹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보이지 않는 등불을, 꿈을, 행복을 찾아가라 합니다.

그 결과, 지구촌에서 자영업자가 제일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좋은 말로 자영업자이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마지막 발버둥일지도 모릅니다.

직장이나 조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신들의 존재를 믿을 수 없는 현실,

무능력자로 낙인찍힌 따가운 시선,

구원의 손길 하나, 빛 한 줄기 들어올 수 없는 밑바닥,

뼈 마디마디 다 빼앗겨 걸을 힘조차 없는 무기력함,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의 저주스러움,    


그러나, 사람에 따라 시간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섭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 합니다.

사전적 의미의 영장은 영묘한 힘을 가진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사람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생각건대, 영묘한 힘 이란 무엇을 창조해내는 힘이 아닐까요.

그런데 이 영묘한 힘으로 같은 인간을 괴롭히고 해롭게 하고 있으니, 단군의 건국이념이자 정치 교육에서 부르짖는 홍익인간은 어디로 갔는지.     


나도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실의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고즈넉한 숲 속의 산책길을 걷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한숨을 내쉬었는지,

그 한숨의 둘레와 높이가 한라산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원망스러운 얼굴, 미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하면서 걸었습니다.

산책이라는 미명 하에 숲을 사정없이 짓밟으며 걸었습니다.

숲 속의 새소리까지 죽이면서 걸었습니다.    


한숨만 뱉은 것이 아니라  본의 아니게 숲의 생명을 짓밟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남에게 상처 줄까 봐 조심스럽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순전히 주관적인 판단인가 봅니다.

이 숲의 생명을 짓밟고 다닌 것처럼, 무한경쟁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자존심을 짓밟고 살아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 조그만 이익을 위해, 육체적 안락을 위해,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도 기억 못 하는 심한 말로 남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미워하며 상대방도 나를 미워하고, 사랑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를 사랑으로 대한다는, 이 간단한 원리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아침, 그날은 한숨보다는 반성하는 마음으로 숲길을 걸었습니다.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고 발걸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예전보다 작은 한숨을 숲길에 뿌리며 걷고 있습니다.

얼마를 걸었을까.

숲길 중앙에 눈에 보일 듯 말 듯 꽃봉오리 하나 보입니다.     


어제 보지 못한 꽃봉오리가

아직 젖도 떼지 못한 꽃봉오리가

서투른 화장 젖살의 웃음보에

턱선이 아름다운 꽃봉오리 하나가

나를 보고 수줍게 미소를 보냅니다.

내 한숨의 무덤을 뚫고

고개 내민 꽃봉오리

가슴 한쪽이 짠해져 옵니다.


인간이란 것이

이렇게 부끄러울 때가 있다니.    



희망의 씨앗을 버리지 말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한.    

먼저 핀 꽃이 먼저 시듭니다.

오늘 꽃 피우지 않았다고 좌절하지 말자

평생 꽃 피우면서 사는 인생은 없습니다.

중심에서 핀 꽃이

가장자리에 핀 꽃보다 화려하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누구든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마음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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