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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Jun 18. 2021

인도네시아에서 계약하기(1)

언어가 뭐 이리 중요해?

세계의 몇몇 국가들은 계약의 언어를 법으로 제한하거나 심지어 정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우리는 보통 사인간의 계약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게 합의해서 체결한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런 독특한 나라 중 하나가 인도네시아입니다.


하아.... 인도네시아... 너무 많은 이슈들로 인도네시아를 밥 먹듯이 드나들던 때가 떠오르네요. 첫 출장에서 풍토병에 걸리기도 하고... 자카르타의 교통 지옥 속에서 일주일간 출퇴근을 왕복 6시간씩 했던 혼란한 기억이.... 그래도 음식은 진짜 JMT.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도네시아에선 계약서를 어떤 언어로 체결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 프로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변호사들 맨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백 프로는 없고,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등을 입에 달고 사는데 그거 사실 좀 짜증 나죠. 그... 그런데. 저도 첫 회부터 그 cliche를 뱉고 말았....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그래요. 흑....)


그러나 리스크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관련법(Article 31 Number 24 of 2009 of Indonesian Law or the Language Law)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기관이나, 인도네시아 사람(이하, "자연인"), 인도네시아 회사(이하, "법인")와 계약을 체결할 때는 인도네시아어인 Bahasa로 체결을 해야 한다고 돼있어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는 계약이 유효하기 위해 특정 언어로 체결해야 한다는 은 없죠. 상식적으로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러니 인니 법이  특이한 거죠.


설상가상,


2013년쯤 미국 회사랑 인니 회사 간에 영어로 체결된 대출약정서 관련 분쟁이 발생했는데, 인도네시아 법원에서는 영어로 체결한 계약은 무효라고 판결을 하기까지 했었죠.




정말 극악무도한 판결이었죠. 대출약정서가 무효라고 하니, 그 약정서에 부수하여 체결된 담보 계약서도 무효가 되어 그에 따른 담보권 행사를 할 수 없게 되는 등 불이익이 커진거죠! 외국인들이 사업하기 참.... 어려운 환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후 계약서 언어에 대한 실무상의 논란은 계속되었죠. 모든 것이 불투명했습니다. 인도네시아 회사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인도네시아 법이 준거법일 때만 해당되는지 혼란 그 자체죠.


그런 혼란 속에 세월이 흘러,


2019년 6월 즈음,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런 모호한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주려는 의도로 관련법에 대한 시행령 PR63/2019를 만들기도 했는데. 음.... 이 시행령이 약간의 도움은 되지만 많이 애매하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여기서 법에 대해 일일이 설명은 하지 않습니다! 법 조항 별로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이 매거진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뭐 하면 돼?"에 대한 팁을 드리기 위해 쓰는 매거진이니까요.



그럼, 외국인 입장에서 현실적 이야기!!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의 문서에 Bahasa와 영어 또는 한국어 등 우리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side-by-side로 병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인도네시아인들 사이에 계약을 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 언어를 병기했다 하더라도, 계약서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불거질 때 Bahasa의 해석이 우선하고 유효합니다.


여기서 정말 유의해야 할 것은!! "인도네시아인 사이에"라는 말에 "음. 그럼 나는 외국인이니까 상관없는 부분이군."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인도네시아인이라는 것은 자연인과 법인을 모두 포함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한국인이라도 여러분이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회사는 인도네시아인! 이죠. 인도네시아에 설립된 회사들끼리 계약을 하는 경우 Bahasa가 우선한다는 점 꼭 기억하시고, 영어나 한국어와 내용이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주의 깊게 체크하세요.



 인도네시아인과 외국인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 두 가지 언어를 병기하면서, 계약서에 조항을 추가하여 "두 언어의 해석상 상이한 부분이 있을 경우 00 언어가 우선한다."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이 경우도 Bahasa와 외국어가 정확하게 모두 일치하도록 처음부터 꼼꼼히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계약이란 것이 분쟁이 발생하면 서로 해석을 달리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답니다.



⑶ 이미 영어나 한국어로만 계약서가 존재하고 Bahasa는 없는 경우 불안하실 수 있죠. 나중에 분쟁이 생겼는데, 이 계약 무효라고 하면 어쩌나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리스크가 있는 부분입니다. 제 의견으로는 지금이라도 Bahasa 버전을 기존 계약서에 별첨 형식으로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번역 비용이나 추가 계약 절차가 오히려 계약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면 현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비교형량 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어요!



★ 특별법이 따로 있는 분야는 반드시 변호사를 통해 확인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법상 근로계약서는 무조건 Bahasa만 유효하거든요. 혹시라도 사업하시면서 근로계약서를 영어로 작성하셨거나, 혹은 누가 영어 계약서만 서명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경우 등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외국인이라서 여러모로 낯설고 힘든데, 계약할 때 시간과 비용도 더 들여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꿋꿋이 성장하고 성공하시길 바라요. 지금도 해외에서 고군분투하시는 많은 한국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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