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욕고불만 06화

(3) TA GUEULE

욕마저 고상하다는 불어를 만나다(3)

by Fernweh

TA GUEULE [따 궬]


자음 ‘R’이 성대를 긁어대며 흠집을 낸 프랑스어의 고상함을 다른 많은 자음이 보완해준다. ‘C’, ‘T’, ‘P’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영어가 먼저 떠올라서인지 ㅋ, ㅌ, ㅍ, 거센소리를 낼 것 같지만, 고상한 발음에 거세다는 형용사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거센 음가 위를 한 번 다져낸 된소리 ㄲ, ㄸ, ㅃ 소리를 낸다.


‘택시 타고 파리 바게트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할래?’

‘땍씨 타고 빠리 바게뜨 까페에 가서 까페 한잔할래?’


거센소리를 늘 아주 거칠게, 침방울을 튀게 하며 말하진 않지만, 일부러 과장해서 읽어본다면 ㅋ, ㅌ, ㅍ와 ㄲ, ㄸ, ㅃ가 지닌 어감이 다르단 게 느껴진다. (저만 그런 게 아니길...) 그렇다. 불어로 ‘Taxi’는 ‘딱씨’, 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파리 바게트는 ‘빠리 바게뜨’가 되어 우아함이 한층 업그레이드된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우리 안에 고상함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는 것. 카페를 갈 때 그 누구도 애써 ‘카페’간다고 하지 않고 ‘까페’ 간다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 보태는 깨알 같은 지식 하나. 커피를 마시는 장소도 마시는 커피도 프랑스어로는 모두 ‘까페’다. ‘까페에 가서 까페 한 잔’이라고 쓴 이유이기도 하고. (‘Coffee’를 된소리로 발음해 ‘꼬피’라고 하지 않아서 어색하지만 ‘까페 한 잔’이라고 했다)


프랑스어 자음은 된소리입니다, 하고 마침표를 콕 찍고 넘어가면 참 좋으련만 참 호락호락하지 않은 고상함을 지닌 게 또 프랑스어다. 규칙에 따르면 ‘C’를 모음에 붙이면 ‘까, 끼, 꾸, 께, 꼬’가 되어야 하는데 ‘까, 씨, 꾸, 쎄, 꼬’이다. 모음 ‘i’와 ‘e’에선 쌍시옷 발음으로 변한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거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i’와 ‘e’ 놓으니 기역 자도 사라져 버린 모양새라 황당할 따름이다. 발음 규칙을 배우는 단계에선 이 정도는 껌이라고 여겼는데, 단어 형태로 자모 결합이 제시되면 쌍기역과 쌍시옷 갈림길에서 일단 멈춰야 했다. ‘C’에 ‘I’가 붙으면 ‘끼’ 아니고 ‘씨’ 발음이다, ‘씨’ 발음. ‘씨’ 발ㅇ... (욕한 거 아님)


이런 ‘씨’ 발음과 비슷한 녀석이 하나 더 있다. 마침 그 친구가 ‘G’여서 참으로 ‘쥐’랄 맞지 않을 수 없었다. G에도 모음을 붙이면 ‘가, 기, 구, 게, 고’던가 ‘좌, 쥐, 쥬, 줴, 죠’던가, 하나만 할 것이지 ‘가, 쥐, 구, 줴, 고’다. (정확히 ‘Ca’와 ‘Ga’는 ‘꺄, 갸’ 발음에 가깝지만, 여기선 ‘까, 가’로 썼다)


발음이 분화되는 정도가 엄청 까다로운 건 아니라 입에 금방 익긴 한다. 문제는 프랑스인에게도 ‘끼, 께’와 ‘기, 게’ 발음은 필요하단 사실. 그렇게 또 규칙은 추가되고야 만다. ‘Ge’, ‘Gi’는 줴, 쥐이지만 ‘Gue’, ‘Gui’는 궤, 귀 발음으로 회귀한다. 자, 이쯤 되면 발음 규칙 운운하는 나를 향해 외치고들 싶으실 터. 닥치라고 말이다.


‘씨’ 발음과 ‘G’랄 맞은 이야기 위로 탄탄히 구축된 이번 편의 욕은 바로 ‘닥쳐’, ‘Ta gueule’이다. 두 번째 단어에 ‘gue’가 확 눈에 들어오시는지. ‘Gueule’이란 단어가 짐승의 아가리를 뜻하기 때문에 격한 상황에선 ‘주둥이 닫아’, 나아가선 <스카이캐슬>의 명대사 ‘아갈머리 확 찢어 버릴라’로도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번 편에 실린 욕까지 마스터하면 시바견과 얼음의 신을 소환하고 닭까지 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한 가지 문제는 피똥 싸며 꼬나보는 발음에 비해 아갈머리 프랑스어 버전은 발음이 꽤 복잡하다. 제목에 한글로 달아 둔 ‘따 궬’ 발음으로도 상대방이 알아듣긴 하겠지만 한국어로 ‘궬’ 소리를 낼 때보다 입술을 더 오므린 상태로 해야 한다. (발음 설명을 글로 하는 게 어렵다는 걸 새삼스레 느끼는 중) 상대방 입을 다물게 해야 하건만 고상함을 풍기고 싶은지 화자 자신이 입을 오므린 채로 닥치라고 한다.


이게 다 모음 ‘eu’ 때문이다. ‘g’에 ‘e’가 붙을 때 ㄱ 소리가 나도록 ‘gue’ 형태가 됨을 설명했으나, 아가리란 단어에 붙은 모음은 사실 ‘eu’이다. 하필 발음이 ‘외’여서 이 발음은 도무지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를 그럴 발음이기도 하다. 한글 소리 그대로 편안히 ‘외’칠 수 있는 발음이었다면 행복할 수 있었을 발음이다.


고작 발음 하나에 행복을 운운하는 이유는 바로 형용사 ‘행복한’에 이 발음이 두 번이나 들어가기 때문. 실제로 프랑스어를 공부하던 친구가 ‘나는 행복합니다’를 말하고 싶은데 발음 때문에 말할 수 없어 더는 행복하지 않은 프랑스어 공부를 포기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문제의 그 문장은 ‘je suis heureux.’ [쥬 쉬 죄회] 한국어처럼 ‘ㅗ’, ‘ㅣ’를 연달아 미끄러지듯 발음하는 게 아니라 단모음으로, 그러니까 ‘ㅗ’ 입술 모양을 한 채 ‘ㅔ’ 소리를 내야 한다. 버젓이 모음이 두 개 붙어 있는데 모음 소리 두 개 말고 하나만 내라고 하니 궁예가 살아있다면 ‘누가 두 모음 소리를 다 내었는가’하고 철퇴를 내리쳤을 것이다. 피똥 싸던 이야기에서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putain’의 ‘u’ [위] 발음도 비슷한 맥락이다.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 욕이란 콘텐츠는 확실히 관심을 끄는 마력이 있다. 근데 정작 발음이 이다지도 어려우면 어쩌란 말인가. 바르고 고운 말, 예쁜 말만 쓰라는 신의 계시라고 하기엔 내 입에서 튀어나와 구천을 맴돌던 욕들이 떠올라 나부터 잘하자는 다짐을 하는 글쓰기 시간이었다.


DSC_1048.jpg 꿀잠잘 때 확성기만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사람에게 외치자, 'Ta gue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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