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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Dresden에서 클래식을

by 딜리버 리

첫 직장이 인쇄물 편집디자인 회사였는데 거래처 중에 시립교향악단이 있었다. 그때는 공연 홍보를 포스터, 프로그램집, 전단지 등으로 했는데, 디자인 잡는데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러다 그 일을 관두곤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재미를 못 느낀 듯하다. 클래식음악 문외한이기도 했지만 관객석과 뚝 떨어진 일자형 무대배치로 지휘자의 등만 바라보며 들어야 하는 연주형식도 거든 듯하다.


그 뒤 파리에 장기체류하면서 이탈리아 베네치아 여행을 갔던 어느 날, 안개가 자욱해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 안 되는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 어느 교회 앞에 이르렀다. 대체 여긴 어디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교회 문에 붙은 공연 포스터, 마침 오늘, 지금이었다. 우연은 들이닥치는 법, 문을 열고 들어섰고 어쩌다 보니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연주자들과 가까운 거리에 앉게 되었다. 그때 어떤 곡이었는지, 연주자들이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연주 내내 충만했던 감정이 20년이 지나도 남아있다.


클빠(클래식음악 애호가)인 K님이 미리 구매해 둔 드레스덴필하모니 공연을 직관하러 드레스덴으로 갔다. 일본계 미국인 켄트 노가노가 지휘자다. 클문(클래식 문외한)이 클빠인 K님에게,

-드레스덴필하모니 레벨(이란 말을 써도 되나 싶지만) 어느 정도?

-정상급

-켄트 노가노는 유명해요?

-으음…(이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하다니!) 유명해

-그 사람은 객원이잖아요. 소속된 데가 없어요?

-함부르크 상임이지

-거기도 유명해요?

-(계속 대답해줘야 하나) 정상급

-왜 여기서 해요? 자기 교향악단에서 하면 되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 맨날 같은 팀과 하는 것보다 다른 팀과 협업하면 음악적으로 상호 얻는 것도 있을 테고, 흥행 측면도 무시 못할 테고

-아~


문화궁전(왜 궁전이란 봉건적 용어를 쓰나 싶지만 직관적이다)은 버스와 트램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에 있는 접근하기 쉬운 장소다. 미리 구매해서 싸긴 하지만 27유로, 비싸서 못 가겠단 소리 못하겠다. 70대는 훌쩍 넘었을 노인네부터 팔팔한 젊은이들, 제법 차려입은 이들부터 평범한 평상복의 사람까지 다양하다. 공연시작하면 출입문은 하나만 열고, 외투는 보관소에 맡기고 입장해야 한다. 한국에서 어떤 형태의 실내공연(영화 포함)이든 시작 전에 핸드폰 꺼라는 안내를 하는데, 안 한다. 그래도 인터미션까지 있는 공연 내내 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당연한 건 알아서 해야 한다.


좌석 배치가 360도다. 오호~ 조율 중인 연주자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조금 있자 희끗희끗한 장발에 깡마른 노인네가 들어선다. 켄트 노가노, 그의 손짓과 표정에 따라 마치 칼군무를 추는 아이돌그룹처럼, 오랜 시간 훈련된 군인들처럼 일사불란한데 유려하다. 하~ 좋으다! 한국 돌아가면 시립교향악단 공연을 가봐야겠다. 여행은 미처 몰랐거나 잊고 있었던 감각과 기억을 불러내기도 한다. #케이하우스, K님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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