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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Jan 21. 2024

후쿠오카, 가야겠다

오토바이 덕분에 떠오른 기억

자타공인 출중한 연비에 처음과 많이 달라지지 않은 디자인, 시끄럽지 않은 부드등~ 잔잔한 배기음을 뽐내는 혼다의 슈퍼커브 110에 충분히 만족하므로(80km 얼마나 빠른데!), 훨씬 비싸고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상위 기종(운전면허도 따로 필요한다) 오토바이에 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비싼 오토바이를 보면 우와~ 멋지다 한마디와 자신의 비쌈을 요란스레 자랑하는 자태는 눈요기만으로 충분하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처럼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하는 마음,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남과의 비교라지 않는가? 난 불행하고 싶지 않다.


작년 여름과 가을엔 전혀 못 느꼈는데, 겨울에 오토바이 타려니 파고드는 한기 때문에 방한용품(무엇보다 무릎, 장갑)이 필요하고, 디자인감이 있는 비옷(갑자기 내리는 빗속을 달려보니 빗방울이 아프게 때리고 춥더라)과 방수기능 갖춘 가방, 오토바이족에게 유일한 생명보호장비인 헬멧(첫사고가 버스 충돌이었는데 잠시 기절, 헬멧은 정말 중요하다)을 찾고있었데, 집 근처에 있는 오토바이 용품 매장은 너무 비싸서 구경할 마음마저 사라졌고, 에잇~ 언더본 기종 타면서 뭔 놈의 장비빨! 그렇게 마음을 접었다.


중소도시의 헌책방 주인이 일본 서점을 오토바이로 돌아다닌 걸 쓴 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오토바이, #책방 때문에 빌렸는데, 오호~ 후쿠오카에 엄청나게 크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일본 전역에 매장이 있는 오토바이 용품 프랜차이즈 니린칸(이륜관, 이륜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어 오도방 일지가 이륜 일지로 바뀌었다)과 냅스가 있단다. 자신이 선 위치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더니(최규석의 #송곳 대사로 기억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이 있으면 자연스레 고개가 돌려지고, 흘려듣지 않게 된다. 오토바이를 타기 전엔 오토바이 용품에 관심이 아예 없었다. 여행도, 사람도, 세상 사는 것이 그렇다.


20여 년 전, 그와 첫 해외여행이 후쿠오카(규슈).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었는데, 어떤 용기였는지(그가 옆에 있으니 두려울게 뭔가!) 선박+숙소(호텔)만 예약하고, 나머지 일정은 우리가 알아서 여행하는 방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에어텔 형태로 숙소가 예약되어 있어서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 부리나케 달려가다 잃어버린 장갑 한 짝, 나가사키 평화공원을 찾는데 상호 소통이 안되자 공원 입구까지 데려다준 친절한 일본인, 나가사키 하얀 짬뽕(짬뽕이 하얗다니!), 이렇게 다양한 자판기가 이렇게 많다니, 분명 핸드폰을 사용하는데 대중교통에서 전화 벨소리와 통화를 거의 듣지 못했고, 한국은 폴더폰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세로로 긴 폰을 많이 사용하고, 기차 종류가 다양했고, 기차에서 파는 벤또의 종류가 많았고, 비행기처럼 필요한 것만 갖추고 면적을 최소화한 호텔 방크기도 신기했다. 그 다름을 구경하는 게, 그와 같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떠나서 낯선 요소(기후, 음식, 언어, 숙소, 문화 등)를 받아들이는 것이 여행이다. 낯섦과 다름은 여행이 가진 매력인데 비 온다고 욕해봐야 내리던 비가 멈추지 않는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날씨가 왜 이러냐, 여긴 음식이 왜 이래, 불편해 등등 여행지에서 불만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다행히도 원래 낯섦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새로운 걸 접할 때 편견이나 선입견이 강하지 않아서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접하는 걸 좋아했다.(이후 여행자, 여행업자로 돌아다닐 줄 짐작도 못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그가 24시간 내 옆에 있고, 그 낯섦과 다름을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즐거웠다. 그만을 집중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하루 세끼를 같이 밥을 먹고,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을 나누고, 좌충우돌하며 돌아다닌 며칠의 여행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살던 세상에 비해 낯설고 이질적인 여행지에선 예상 밖의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고, 24시간 붙어있는 건 그만큼 충돌할 기회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면 일상에선 삭힐 수 있는 본래 감정이 툭 터져 나오기도 하니까, 여행을 가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안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일상과 여행이 전혀 다르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로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여행지에서 그 사람의 행위를 현장에서 확인할 뿐 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있으니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게 두려웠을 뿐. 아무리 특별한 여행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지만 그나마 자유여행에서는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나눌 가능성이 높다.


여행사 일정대로 움직이며 돌발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거의 없는, 내가 현지 정보를 찾을 필요 없이 가이드의 설명을 내 생각인양 착각하는 패키지 여행상품은 편의성 및 안정성 등을 내세우며(실제론 수익성이 1순위) 여행의 매력인 낯섦과 다름을 최소화시키고, 여행자를 현지와 분리시켜 구경꾼으로 만든다. 즉, 여행자 숫자만큼의 감정이 아니라 대표적 감정 몇 개로 평균화시키고 단체 감정을 만들어낸다. 내가 선택한 여행상품이지만 정작 내 선택이 없는 여행, 형식과 내용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니 규격화되고 표준화된 패키지 감정이 된다. 이렇게 여행의 매력을 없앤 패키지 여행상품이 계속 팔리는 건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맛이 없어도 딱히 쉴 데가 없어서 찾고 무엇보다 카페인은 중독이니까! 낯섦과 다름은 싫은데 어디 갔다 왔다 여행 자랑은 하고 싶고? 패키지로 갈 수밖에! 캐나다의 여행사 대표가 "집과 같은 편안함을 원하면 그냥 집에 있어라"는 말이 여행의 본질 중에 하나 아닐까 싶다.

어쨌든 후쿠오카 여행으로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그에게서 헤어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 나의 현재 조건이 미안했고, 나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었다.


20여 년 전 기억을 떠올려 준 고마운 책이다. 술술 읽힌다. 다 읽고 나니 뒷면에 있는 글, 내 오토바이로 헤드핀을 할 일 없고, 하고 싶지도 않으니 9번 빼곤 공감. 특히 전방주시!

1. 오토바이나 독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방주시!'

2. 오토바이를 타면 균형, 절제, 인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익힐 수 있는데, 책을 읽으면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도 이를 깨달을 수 있다.

3. 라이더와 독서가의 공통점은 ‘오토바이나 책이 자신의 영혼을 움직인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4. 오토바이를 타 보지도 않고 품평하는 것은 책을 읽지 않고 말하는 것과 같다.

5. 베스트셀러가 좋은 책이라는 증거일 수는 없지만, 내구성 있는 오토바이라는 증거일 수는 있다.

6. 꿈꾸던 오토바이를 구해 타고 달리는 기쁨은 좋아하는 작가의 절판된 초판 사인본을 헌책방에서 만나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는 기쁨과 견줄 만하다.

7. 속독과 과속의 끝은 '허무'뿐. 천천히 읽고 느릿하게 달려야 자세히 보고 채울 수 있다.

8. 책이 든든한 스승이라면, 오토바이는 변덕스러운 연인이다. 책은 어떻게 아무 곳에 두어도 불평이 없지만, 오토바이는 조이고 기름 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토라질지 알 수 없다.

9. 허벅지로 연료통을 조이고 헤어핀을 도는 짜릿함은 절정으로 치닫는 스릴러 소설의 다음 장을 넘길 때와 맞먹는다.

10. 오역과 비문 많은 책을 읽는 괴로움은 헬멧 실드에 죽은 날벌레를 그대로 둔 채 밤길을 달리는 괴로움과 다르지 않다.


부산에서 배로도 갈 수 있는 #후쿠오카, 20여 년 전에는 둘이 갔고 지금은 혼자지만 떠나자는 마음을 부추긴다. 마침 엔화가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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