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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Jan 15. 2024

한 살이라도 젊은 오늘을 살아야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4년 1월 11일(목) 맑음

집-용호동-(학교, 아파트 주차장 들림)-집


(거는) 뚜뚜뚜,

-여보세요?

-(목이 잠겨서 불편한 목소리로)여보세요?

-어디 안 좋아요? 목소리가 영…

-몸살 걸려서, 약 먹고 누벘다 일어나서 그래

-지난번에 감기 나아간다더니… 우짜다 몸살이?

-나이가 있으니까. 아픈기 당연하지

-오늘 어디 나갑니꺼?

-응, 안과랑 정형외과

-두 군데나 와?

-안과는 속눈썹이 자꾸 찔러서 뽑아야 하고, 정형외과는 골다공증 주사 맞고, 약 받아야 해서

-언제 가는데요?

-점심시간 지나서

-그럼 2시까지 갈게요

-뭐 할라꼬? 살살 걸어갔다 오면 된다

-엄마랑 살살 걸을라꼬 그러지

-ㅎㅎ


오토바이 타는 걸 아신 후로 엄마의 걱정이 늘었다. 돈 보탤테니 중고차라도 사라는데, 오토바이 타는 것과 자가용의 차이를, 조심해서 타면 괜찮다고 아무리 상세히 얘기한다고 엄마의 걱정이 사라지진 않을꺼라, 버스타고 다닐꺼니 걱정하지 말라고 거짓말 했다. 엄마 사시는 곳에서 멀찍이 파슈수를 주차하고, 헬멧에 짓눌린 머리결을 한참을 가다듬고 걸어갔다.


엄마가 차려준 점심을 먹고, 안과 들려 진찰받고, 정형외과 갔더니 아직 1년이 안 돼서 건강보험이 안된다고,  월말에 오란다. 병원을 나서며,

-엄마, 단팥죽 드실래요?

-오데? 요게 시장에 있는 거

-야, 난 그 집 팥죽이 덜 달아서 괜찮던데, 무봤어예?

-응, 대경이(조카) 군에 가기 전에 두세번 갔지

손 잡고 걷다 팔짱도 꼈다 하면서 천천히 느릿하게 시장 구경하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며 팥죽집으로 걸어간다.


-누가 그러는데 한국인의 현재 욕망 수준을 알 수 있는 현수막이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데, 뭘꺼 같아요?

-현수막을 보고 그런 걸 알아?

-난 그 얘기 듣고 공감 가던데

-뭔데?

-오래된 아파트 입구에 건설사나 입주자 대표회 같은 데서 내건 ‘안전진단 통과’ 축하 현수막 있잖아요.

-안전진단 통과면 축하해도 되는 거 아이가?

-사실은 우리 아파트 안전 진단 통과 못해서 재건축 가능해졌단 얘기잖아

-그럼 말을 그래하면 안 되지(똑 부러지는 양반 ㅋㅋ)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안전에 문제 있다고 진단받았는데, 오히려 축하하고 환호한다는 거야. 현재 삶의 질이나 만족보다 미래에 벌어들일 재산 증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지.

-돈 많으면 좋긴 하지만 돈 아무리 많아도 늙는 건 마찬가지던데, 다들 돈 돈 하니까, 불안해서 그러나?

-그러게. 그놈의 돈 때문에 배신하고, 저버리고, 울고 웃고


주문한 2그릇을 들고 자리에 앉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시더니,

-이기 얼마고?

-3,500원

-그래 싸나? 하이고야~ 요 얼마 전에 동래 사는 어릴 적 친구랑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 만나면 밥 먹고 꼭 영화 보거든.(햐~ 낼모레 80인 양반이 스스로 영화를 보고, 보잘 것 없지만 그나마 있는 나의 장점은 엄마 DNA 덕분인듯) 서면에서 보자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 지하상가는 너무 복잡해서 내가 못 찾을 것 같아서 엄두가 안 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니를 잊어 뿌리겠다 했더니 명륜동으로 오라는 거야.

-무슨 영화 봤는데?

-30일

-30일? 처음 듣는데, 한국 영화야?

-강하늘이랑 어떤 여자랑 만나서 연애하고 그런 영화 있잖아. 그거 보면서 웃고 그랬는데, 나오면서 제목이 뭐냐니까 친구도 모른대.

-하하하~ 그게 뭐꼬?

-나중에 테레비에서 영화 소개하는데 내가 본 기 30일 이대. 후후. 암튼 친구가 영화비 내서 점심은 내가 샀지. 둘 다 늙어서 잘 못 먹으니까 대충 분식 같은 거 먹었어. 헤어질라는데 친구가 이리 와보라면서 델꼬 드간데가 팥죽집이야.

-우와~ 여기 팥죽집에서 또 다른 팥죽집 서사를 이렇게 풀어내다니… 울 엄마 엄청난 스토리 작간데

-작가는 무슨… 니도 예전에 비해 많이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져서 너무 좋다.

-그기 뭔 말이고?

-예전엔 이리 길게 얘기를 다 안 듣고 있었지. 그래서 결론은, 뭔 말하려고, 이런 말이 벌써 나왔지.

-그땐 왜 그렇게 답답해하고, 성질이 참 지랄이었지, 정말 미안해

-괘안타. 인자는 이래 두서없는 내 얘기를 다 들어주잖아

-엄마, 고마워

-뭐가?

-내가 뭘 해도 여전히 내 편이어서

-실없긴, 됐다

-참, 그래서 팥죽집 갔는데?

-아, 맞다. 팥죽 양이 여기 반도 안돼. 견과류 쫌 올리고 그랬어도 8천 원이라는데, 달기만 하고 맛도 별로야. 하이고~ 아무리 백화점이래도 해도 너무 한다 싶더라.


다시 집까지 걸어오며 엄마랑 여행 가려고 적금 드는데 곧 만기 되니까 가까운 데 가자니까, 비행기 타는 게 영 불편하다기에, 부산-후쿠오카는 배로 3시간이면 간다, 대마도는 훨씬 짧다, 국내라도 꼭 가자, 엄마가 혼자 움직일 수 있을때 다니자는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느려도 혼자 걸어 다니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제나 내 편인 엄마, 계속 건강하시길…


(걸려오는) 뚜뚜뚜,

-(뭔 일이지, 걱정스레) 예?

-병원 가서 피검사해봤나? 얼굴살이 너무 빠졌더라

-건강검진 했는데, 아무 문제없대요

-택배하고 살 빠지긴 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작년 여름부터 부쩍 빠져서, 집에 와서 가만 생각하니 걱정이 돼서…

-걱정하지 마요. 진짜 괜찮아요. 작년에 바짝 신경 쓰고 3~4kg가 순식간에 훅 빠지더니 회복이 안돼서 그래. 진짜 몸엔 문제없어요

-돈 모을라꼬 먹는 거 아끼지 마. 퇴근하면서 장 봐서 살뜰히 챙겨 먹어. 늙어 보이 소화 안 돼서 먹는 것도 시원찮고, 식욕도 없어. 한 살이라도 젊은 오늘을 살아야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늙은 몸은 그 돈을 쓰지도 못하더라.

-예, 잘 챙겨 먹을게요


낼모레 80을 앞둔 엄마는 50 중반의 아들이 여전히 걱정이다. 미안하고, 엄마 걱정시킬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단 사실이 슬펐다. 대충 라면으로 때우려다, 그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는 우째 되든가 말든가 현재를 충실하게 잘 먹자!싶어, 에어프라이어에  남은 닭가슴살 3 덩이를 20여분 굽고, 프라이팬에 마늘과 버터 넣고 닭가슴살 투척, 마늘향은 그냥 진리! 카레 가루를 녹인 물을 붓고 올리브오일 듬뿍 뿌리고 졸이듯 뒤적뒤적, 토마토가 없어서 케첩과 아몬드 한 줌 뿌리니, 오호호~ 괘안타.


엄마를 만나러 갈때마다 이미 돌아서버린 어쩔 수 없는 마음이 사는 곳을 들린다. 주차장에 서있는 눈에 익은 차량을 보고, 잘 지내고 있을꺼라고, 여전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다독이고 달랜다. 언젠간 끝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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