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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리버 리 Jan 28. 2024

내가 선택한 길

아버지의 해방일지

2024년 1월 17일(수, 흐림)

집-(강동중곡슈퍼)-(김해공항)-강서도서관-(강동 119 센터)-(녹산 수문)-(용원휴요양병원)-집


빠르게 달리려고 파슈수를 타는 게 아닌데(80km 정도면 핸들이 제법 떨림), 도서관 갈 때 매번 다니던 공항로 아우토반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자 싶어 에코델타시티(자연을 뭉개고 아파트촌을 짓는 토건족들의 뻔뻔함과 당당함, 새 아파트에 환호하는 동료시민들의 욕망이 결합된 단어) 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을 통과해서 김해공항을 빙 둘러서 도서관으로 가는 코스를 택했다. 도로 사정이 아우토반에 비해 속도를 내기 힘드니 시간은 더 걸리지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재미(책에서만 보던 김해평야!)가 있다. 역시 빠를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얕아진다. 날은 흐려도 그리 춥지 않고, 신호등과 차량 정체가 없는 구간이라 오토바이 타기 편하다. 다음에 오도방 파트너 꼬셔서 타야겠다. 앞으로 도서관 갈 때는 이 길로!


도서관 앞 나름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서 바게트 2개를 샀다. 그나저나 한국 빵집은 빵값이 왜 이렇게 비싸고, 케이크나 디저트류 아닌데도 무조건 달달구리하게 만들까? 무슨 뜻인지 짐작도 안 되는 명칭 붙이느라 고민할 필요 없이 달달구리 빵 1, 빵 2 이렇게 이름 짓는 게 편하고, 선택하기도 쉬울 듯하다.


자동차가 못 가는 좁고 가파른 길도 웬만하면 갈 수 있는 게 오토바이의 장점이다. 그래서 이 길은 어떨까, 가볼까 싶으면 그냥 가보는 편이다. 그렇게 다녀보니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딱 하나뿐인 경우는 드물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결과를 우선으로 하면 빨리 가는 길을 찾지만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고 싶을 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여럿이다. 과정보다 결과, 효율성을 당연시하는 세상이니 대부분 빠른 길을 선택한다. 난 바쁠 것 없으니 빙 둘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다니던 길로만 다니면 다른 길이 어떤 지 알 수 없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길로 갈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중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남 탓을 할 수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비슷하다. 자신의 선택한 관계라도 문제가 생기고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새 관계를 선택하려고 기존 관계를 끝낼 목적으로 그 이유를 상대방의 탓으로 몰아가고 헐뜯고 욕하는 건, 지금까지 즐겁게 다녔던 옛길을 새길이 생겼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형편없는 길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그 길을 다녔던 자신을 지우는 일이다. 스스로 불쌍하고 덕분에 상대방도 불쌍해진다.


정지아의 #빨치산의_딸,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없다. 평소 책 읽는 습관을 봤을 때 엇비슷한 소재의 소설이 여럿 있어서 뒤죽박죽 되어서 그럴 수도.  #아버지의_해방일지(나도 아버지의 자식인데, 나의 아버지는 스스로 해방되었을까? 나는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었을까?), 누구의 자식은 자식의 선택이 아닌데, 정지아 작가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누구의 자식이란 소재로만 소설을 쓰나 싶어서 읽을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책 읽기라고 예외일까?


작년 4월 이후 핸드폰으로 별 관심 없는 동영상 클립을 멍하니 계속 보기 시작했고, 그 기간이 길어지니 영화 한 편을 다른 짓(핸드폰 보기) 안 하고 끝까지 보는 것도 힘들었다. 몸을 과도하게 쓰거나 함부로 방치하면 망가지듯 마음(뇌) 역시 방치하면 쉽게 무너진다. 마음(뇌)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만 살아있으면 다른 것은 어찌 되든 상관 안 하니까 망가지고 무너지면 그 상태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뇌)에 근육을 만드는 기초 단계로 도서관에서 소설(이라고 쉽게 읽히진 않더라만)을 종종 대출했다. 하지만 끝까지 읽은 소설은 몇 안되고, 재밌게 술술 읽힌다는 얘기를 여러 경로로 들었는데 도서관 갈 때마다 매번 대출 중이라 못 빌렸고 잊고 있었다.


근데~ 드디어 있다. 더구나 노안이 온 50대 맞춤용으로 큰 글씨 책만 남아있다. 바로 옆 <자본주의의 적>(은 제목이 자극적이라)까지, 그 바로 옆에 처음 보는 정지돈의 소설이 여러 권 있다.(나의 책 고르기는 원래 보려던 책의 옆책인 경우가 왕왕  있다) 쓱 훑는데 체코, 프라하(작년 8월 여행이 궤멸했지만 다시 기회를 엿보는 중) 얘기가 나와서 빌렸다. 이번 도서 대출은 정가네 소설로만!


오랜만에 반납 기한 전에 다 읽었다. 작심하면(이게 참 힘들다) 앉은자리에서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빨치산 출신 아버지를 빌려서 우리네 근현대사가 빚은 한 동네 사는 사람들의 얘기로 풀었다. 언제부터 기억력이 점점 짧아지고, 뭉개진 듯 또렷하지 않다.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은데 다른 건 기억에 없고, ’ 사무치는’, 그 말만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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