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삐삐삐! 새벽 세 시. 삼십 분 전 병동 환자 CPR을 마치고 겨우 눈을 붙였는데 의식이 저 멀리 가기도 전에 시끄러운 삐삐 소리가 잠을 깨웠다. 이 시간에 오는 호출은 빨리 받아야 한다. 응급실이든 병동이든 뭔가 일이 벌어졌단 신호다. 레지던트 2년 차의 가장 큰 임무는 1년 차가 감당 못 할 상황을 해결하는 것. 나는 신발을 구겨 신고 어두운 복도를 달려 응급실로 향했다.
열네 살 남자아이가 어젯밤부터 고열이 나다 멍해지며 전신 발작을 반복해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속효성 항경련제를 주사했는데도 멈추지 않는다는 1년 차의 다급한 호출이었다. 소아 구역 응급실 한쪽 처치실로 들어섰다. 속효성 항경련제가 이미 두 번 들어갔는데도 경련이 멈추지 않아, 매뉴얼 대로 효과가 강력하고 오래가는 진정제를 몸무게에 맞게 천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일 분 정도 지나니 경련이 잦아들고 멈추었다.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서둘러 소아 중환자실로 옮겼다. 지금 경련이 멈췄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계 감염을 확인해야 하고 다시 경련할 경우를 대비해서 팔에 잡은 작은 혈관 대신 어깨 쪽이나 사타구니 쪽의 큰 정맥을 잡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다시 발작하거나 바이털 사인이 나빠질 때 신속하게 약물을 투여할 수 있다.
뇌와 신경계를 감싸며 순환하는 뇌척수액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요추 부위에 큰 바늘을 찌르는 순간 투명해야 할 척수액이 누런 고름처럼 흘러나왔다. 임상병리에 응급 검사로 의뢰했다. 결과는 보나 마나 뇌염이었다. 발작으로 부어오른 뇌의 압력을 낮추는 약물을 투입했다. 항경련제와 강력한 항생제를 투입해야 했다. 그 아이는 용케 잘 버텨주었다. 일주일 뒤 일반 병실로 옮겼고, 얼마 후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퇴원 전 찍은 뇌 MRI를 보니 뇌의 측두엽과 뇌실 주변 뇌 조직 손상의 흔적이 선명했다.
눈썹이 짙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그 아이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아이가 되었다. 조절되지 않는 발작과 정신과 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잘 웃던 아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쏟아냈고, 엄마는 그런 아들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야만 했다. 병실에서 마주치는 아이의 엄마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레지던트 4년 차, 전문의 시험을 마치고 의국에 들어선 내게 후배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그 아이가 건물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아신경과 의사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겪었다. 예측할 수 있었던 죽음, 예상하기 힘들었던 죽음들이 늘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마지막은, 동네 의사가 된 지금까지도 가슴에 박힌 가장 아리고 생생한 기억이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쩌다 밤에 전화벨이 울리면, 그 시절 호출기 소리처럼 들려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일상의 한가운데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시끄러운 벨 소리에 “지금 갑니다!” 대답하며 벌떡 일어나는 순간,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이 파고든다.
그 아이는, 정말 좋은 곳으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