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_원하는 만큼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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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77일 SMA 환아, 졸겐스마 투여 성공.’

진료실 책상에 놓인 신문 기사 제목이 유독 선명했다. 척수성근위축증(Spinal muscular dystrophy, SMA)은 운동신경과 관련된 유전자의 결함으로, 근육이 점차 약해지기 때문에 호흡근에도 문제가 생겨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병이다. 척수성근위축증 가운데서도 중증인 제1형 환자는 치료받지 않으면 만 2세 이전에 대부분 사망하거나 인공호흡기에 영구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졸겐스마는 단 한 번의 주사로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20억짜리 기적의 약이다. 1회 주사 비용이 20억이지만 얼마 전부터 보험 급여가 적용되어 환자의 소득에 따라 83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 부담하면 된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한 번이면 더 이상 치료제가 필요하지 않은 기적의 약이니 예전 같았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던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다.

이 기적 같은 소식은, 순간, 아무런 희망을 약속할 수 없었던 한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K는 리 증후군(Leigh syndrome) 환자였다.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SMA와 마찬가지로 호흡곤란 등으로 2~3세에 75%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리 증후군은 공식적인 치료제가 없다. K는 리 증후군으로 진단받고 호흡곤란이 있을 때면 입원하던 아이였다. 그날도 숨을 쉬지 못해 응급실로 왔고,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기에 기관지를 절개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당시 2002 월드컵이 한창이었고 제1연평해전으로 우리 젊은 병사들이 희생되었던 격동의 시기였다. 하지만 K에게는 오로지 중환자실에서 버텨내야 하는 그날만 있었을 것이다. 숨을 쉬기 위해 생명줄을 잡고 있어야 했던 K. 그 아이를 살리고 지켜내야 하는 나와 동료들도 월드컵이며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교과서에 단 몇 줄. 진단과 증상만 기술된 그 아이의 질환. K를 지키기 위해 교과서 너머 어딘가 존재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논문과 증례보고를 밤새 뒤졌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숨쉬기 힘들 때 숨 쉬게 해주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2주를 버텨낸 K는 활력징후도 안정되고 전반적인 상태도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갈 수 있었다. 문제는 인공호흡기였다. 집에서도 숨쉬기 힘들면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이동식 인공호흡기(home ventilator)였다. 사회사업팀이 주선하여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고 다행히 좋은 마음을 가진 분의 도움으로 K는 웃으면서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이십 년 만에 그날의 방송 영상을 다시 보았다.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울던 순간과 상태가 호전되어 웃으며 재롱 피우던 장면이 처음 보는 영화처럼 지나갔다.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고, 안도의 한숨도 저절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병원에서보다 더 환하게 웃는 K. 넉넉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따뜻한 가족애가 가득 찬 공간을 보았다. 흐뭇하게 지켜보다 뒤이어 나온 영상에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울고 말았다.

“원하는 만큼 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말에 흔들리는 K 엄마의 두 눈을 보았다. 의사로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어린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나의 말이 그녀의 가슴을 얼마나 찢어 놓았을까.

나는 다시 ‘졸겐스마’ 기사를 읽었다. 그때 K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기적을 선물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퇴원하던 날, 기뻐서 서럽게 울던 K. “좋은 날인데 왜 울어.” 내 말에 눈물을 참으려 애쓰던 아이는 지금 서른이 넘었을 것이다. 이 땅 어디에선가 잘살고 있을 K에게, 그날처럼 좋은 날만 가득하기를. 마음 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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