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소아 병동 당직실에서 눈을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어쩌다 찾아오는 조용한 날은 복권 당첨과 같았지만, 대부분은 ‘꽝’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컵라면에 물을 붓는 순간, 어김없이 삐삐가 울렸다. ‘4444xx’. CPR(심폐소생술) 신호였다. 젓가락을 던져 놓고 처치실로 달려갔다. 병동 당직 A가 흉부 압박을 하고 있었다. Ambu(Air mask bag unit의 약자. 산소 공급을 위해 필요한 보조 도구)를 짜고 있는 동기 C 옆에는 기도 삽관을 할 수 있는 기구들이 놓여있었다.
Ambu 마스크 아래 보이는 작은 얼굴. 며칠 전 입원한 P였다. 두 살 조금 지난 P는 오동통한 얼굴에 비해 팔다리가 가녀렸다. 몸속에서 중요한 전해질 중 하나인 칼륨이 빠져나가는 병, Bartter 증후군이다. 며칠 전 응급실에서 한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다. 칼륨이 굉장히 낮았다. 무기력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심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서둘러 칼륨을 포함한 전해질 보충을 했다. 며칠 상태가 안정되었는데 그날 일이 터진 것이다.
기도 유지를 위해 서둘러 기도삽관을 하고 번갈아 가면서 흉부 압박과 Ambu를 짰다. 팔에 잡힌 얇은 혈관은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약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큰 혈관인 사타구니의 대퇴정맥에 어렵게 라인을 잡고 전해질이며 강심제를 투입했다. 그날 밤 병원에 남아있던 소아청소년과 의사들 모두 뜬 눈으로 그 아이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새벽 네 시경 모니터의 심장 박동 그래프는 일직선을 그렸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어도 심장 박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젊은 아이 엄마는 한참 동안 울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이 엄마는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로 갔다.
울음 섞인 그 목소리. 이십 년도 더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다. 아이 잃은 어머니 마음보다 더 아픈 이가 있을까? 위로되지 않는 아픔들에 같이 아파했던 날들을 지나왔다.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떠올랐다. 소아청소년과중에서 난이도 및 중증도가 높은 신생아분과는 힘들기도 하고 24시간 응급 호출을 받아야 하기에 기피되는 분야이다. 1kg도 되지 않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밤낮을 잊고 고군분투하는 그들. 부모만큼 아이를 살리려고 애쓰는 이가 그들이다. 그 사건으로 의사 몇이 구속되었다. 2019년 2월 21일 1심, 2022년 2월 16일 2심에서 의료진 전원 무죄 그리고 2022년 12월 15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어 사건은 5년 만에 종결되었다.
대학병원 종합병원에 있으면서 나도 아이를 여럿 잃었다. 힘들고 아픈 일이었다. 관련된 여러 과 의사들이 모여 사망 과정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보고 다시 봤다. 이번에는 아이를 잃었지만, 내일은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식과 마음의 끈을 바짝 조였었다.
며칠 전 인천 길병원에서 소아청소년과 입원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뉴스가 모든 언론 1면에 나왔다. 이미 예측된 일이었지만 전문의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인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을 보고 깜짝 놀랐다. Big 5에 속하는 대학병원에 14명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필요한데 한 명도 지원하지 않은 것이다. 육십이 넘은 모교 지도교수님이 여전히 당직 서느라 힘들어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16%대의 전공의 지원율. 대학병원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몇 년 뒤면 아이를 봐줄 동네 소아과 의사부터 중증 질환을 해결할 수 있는 세부 영역의 전문의도 없어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다. 젊은 의사들이 피하게 된 원인에 출산율 감소도 한몫했겠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압박감도 상당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고생했다고 말하며 돌아서던 아이 엄마의 목소리.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밤새워 노력했던 동료들의 지친 얼굴. ‘4444’ 울리던 삐삐 소리. 아직도 그날의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아슬아슬한 현장에서 한발 물러선 지금, CPR을 알리는 그 소리를 들을 일이 없다. 그리고 내가 서 있었던 그곳도 CPR 없는 조용한 병원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