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저녁 열 시. 명상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고요 속에 쉬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동료 의사의 다급한 목소리. 경련을 반복하는 아이에게 진정제를 두 번 주사했다는 말에, 나는 곧장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며칠 전 외래에서 만난 환자였다. 심장기형에 뼈 성장에도 문제 있던 29개월 여자아이는 몸이 뻣뻣해지고 눈이 돌아가며 멍해지는 경련을 두 차례나 했다. 경련이 멈춘 것은 진정제가 몇 번 들어가고 나서였다.
“경련을 할 수 있으니 잘 지켜보셔야 한다”라고 부모님께 설명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경련을 처음 경험한 아이 엄마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떨고 있었다. 선천성 기형이 있는 데다 열이 나면서 이미 두 차례나 경련했기에 뇌수막염 같은 심각한 감염을 구별하고 경련이 멈추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항경련제를 준비하고 앰뷸런스에 아이를 태워 보냈다. 멀어지는 경광등 불빛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래전, 항구를 떠나던 작은 배의 불빛이 떠올랐다.
의대를 갓 졸업한 이십 대 후반. 인구 천명의 작은 섬, 사량도 공중보건의사로 발령받고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고려호’를 탔다. 뱃전에 스쳐 지나는 갯내 묻은 따뜻한 봄바람 너머 파릇한 두 섬, 사량도가 보였다. 배에서 내려 제일 먼저 동네 다방을 찾았다. 얘기 들은 대로 동네 다방 옆 누렇게 바랜 흰 건물이 보건지소였다. 관사는 진료실 끝 작은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보건지소는 퇴근이 없었다. 낡은 스테인리스 문틀에 붙은 뿌연 간유리로는 ‘보건지소 의사는 퇴근했으니 내일 해 뜨면 오라’는 신호가 될 수 없었다. 함께 근무하는 치과 의사와 저녁을 먹고 통영 시내에서 빌려온 비디오테이프 영화를 보고 있을 때였다.
쾅쾅. 관사 가득 공명을 일으킬 정도로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 둘 다 화들짝 놀라 문을 열었다. 차로 이십여 분 걸리는 섬 안쪽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두 남자가 머리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을 부축하고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을 잔치에서 술을 마시고 즐거운 분위기가 한창일 때 별안간 한 사내가 남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세게 내리친 것이었다. 머리에 동여맨 붕대 두어 겹을 벗겨낸 순간, 꺾인 수도 호스에서 물이 발사되듯 피가 솟구쳐 올랐다. 두피 혈관이 터졌는지 머리뼈 일부가 손상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른 전문 시설이 있는 곳으로 보내야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해양경찰의 도움으로 배를 띄울 수 있었고 가까운 삼천포의 종합병원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선창가에 서서, 환자를 태운 배가 남긴 희미한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외래로 올라갔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말을 건넸다.
“아이 할아버집니다. 괜찮겠습니까? 별일 없겠습니까?”
“경련도 멈추고 정신도 돌아오고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혹시 경련을 또 하면 다른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어서….”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 애썼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러고는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게로 서둘러 가셨다.
의사 면허받은 지 삼십 년. 그 세월 동안 나는 수많은 아이를 떠나보냈다. 항구에서 멀어지던 그날의 배처럼, 오늘 병원을 떠난 앰뷸런스처럼. 어떤 아이는 손 흔들며 항구로 돌아왔고, 많이 아팠던 아이는 뱃고동 너머 날리던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간과 함께 새겨진 옹이 같은 기억. 어쩌면 굽어 자라 쓸모없어졌을지도 모를 나무처럼 엉뚱한 곳에 서 있을 뻔했던 나를, 곧게 자라도록 붙잡아준 것은 바로 아팠던 그 아이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