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_젊은 아빠의 뒷모습에 신의 가호를 빌어본다

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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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접수창에 0세 아이가 떴다. 깜짝 놀랐다. 이십 년 차 소아과 의사지만, 아직도 신생아를 볼 때는 긴장된다. 감기 같은 작은 감염 하나가 순식간에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후 3일 된 신생아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운 아기는 조금 늘어져 있었다. 활기가 없어 보였으며 피부색도 처져 있고 명치 아래 배는 빵빵하게 불러 있었다. 진찰 기록지에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acute ill-looking appearance(진찰 소견의 첫머리에 쓰이는 말로, 매우 아파 보일 때 사용하는 표현) 바로 그 자체였다. 아이를 안고 온 산후조리원 직원과 보호자가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의 진료 의뢰서를 꺼내놓았다. 검은 피가 조금 섞인 구토를 하고 늘어져서 보내니 검사하고 처치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생후 3일 된 아픈 신생아는 언론에 가끔 나오는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해서 숙련된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신생아를 치료할 인력이며 시설이 없는 나로서는 난감할 노릇이었다. 청진을 한 후 우선 복부 X-선 사진을 찍어 보자고 했다.

“배 X-ray 사진을 보면 가스가 많이 차 있고 loop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폐쇄 등의 가능성을 설명하고 서둘러 대학병원으로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까운 대학병원이 한 시간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병원이라도 신생아집중치료실이 충분하지 않기에 받아준 것 만 해도 고마웠다.

“대학병원으로 꼭 가야 하나요?”

몇 번이고 되묻는 젊은 아빠에게, 나는 안타까운 눈빛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무거운 걸음 떼어내는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아주 오래전 나를 보았다.

그날, 만삭의 아내는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했다. 분만실로 가기 전 체크한 아내의 혈압이 너무 높았다. 임신 전에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임신하고 나서 나타난 증상이었다. 소도시, 그것도 저녁 시간에 감당하기는 어려웠던지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앰뷸런스에 누워 불안한 얼굴로 눈물 흘리던 아내 얼굴을 보며 두 손을 꼭 쥐었다.

다음 날 새벽 1시쯤, 첫 아이가 태어났다. 엄마 뱃속에서 잘 크지 못했는지 명칭도 어려운 부당경량아란 딱지를 달고서. 부당경량아(Small for gestational age)란 임신기간 37주 이상에서 출생체중이 2,500g 미만이거나 임신기간에 비해 출생체중이 3백분위수 미만인 경우를 말하는데 아이는 그 기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1,880g으로 태어난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손바닥만 한 아이였다.

하얀 얼굴에 팔다리를 꼼지락꼼지락하는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남겨두고, 그것도 다른 도시에 두고 돌아서던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3주가 지나서야 돌아온 어여쁜 아이는 다행히도 무럭무럭 잘 자라서 사람 구실 하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다. 그 3주 동안 정말 세심하게 아이를 보살펴 주셨던 소아청소년과 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영화처럼 그를 다시 만났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와 소아신경과 전임의 수련을 마치고 뭔지 모를 끌림에 첫 아이가 태어났던 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기에, 나는 그 후로 삶의 무게 앞에 늘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디디려 애쓰고 있다. 물론 늘 뜻대로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날의 나처럼, 아이만큼이나 축 처진 어깨로 진료실을 나서던 젊은 아빠. 그의 뒷모습이 눈에 밟혀 다음날 수소문해 물었더니, 아이는 '선천성 소장폐쇄'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늦지 않게 보냈다는 안도감과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부디 수술받는 아이와 그 곁을 지키는 부모에게, 기적 같은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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