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새벽 여섯 시, 알람 소리에 서둘러 일어났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열리는 수면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네 시간 걸려 병원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 걸음의 고단함이 밀려왔다. 소아과 의사이자 소아신경과 전문의인 내가 왜, 수면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까? 며칠 전 읽었던 신문 기사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출산율 0.81. 신생아 수 26만 명. 지방 소멸을 경고하듯 한반도 전역이 붉게 표시된 지도와, 150조 원을 쏟아붓고도 실패한 출산 장려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였다. 거대한 담론보다 더 내게는 당장 병원의 생존이 더 현실적인 문제였다. 아이 울음소리가 멎어가는 인구 25만의 작은 도시에서, 나는 몇십 명의 직원들과 함께 소아청소년 병원을 꾸려나가야 했다.
Kekule이란 화학자는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을 꿈에서 보고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벤젠의 분자구조를 밝혀냈다. 과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그의 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존의 고민을 하던 중 신문의 ‘수면’과 관련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뇌파를 전공했던 내게 ‘수면 분석’은 그리 어려운 분야가 아니었다. ‘이거다!’ 싶었다. 나는 주말을 반납하며 일 년을 꼬박 매달린 끝에 자격을 얻었고, 비어 있던 병실은 수면무호흡 환자들을 위한 검사실로 바꿨다. 수면무호흡으로 낮에 졸리거나 피곤하여 일상에 지장을 느끼는 분들이 알음알음으로 오기 시작했다.
수면과 관련된 최신 지식을 꾸준히 유지해야만 다음 5년 동안 자격이 인정되기에 이번 학술 대회에 참석했다. 오전 내내 이어진 열띤 강의는 새벽부터 서두른 노고가 아깝지 않은 귀한 시간이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손에 들었다. 지은 지 삼 년밖에 되지 않아 깔끔함이 묻어 있는 병원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그분을 만났다. ‘치유자 그리스도’ 상. 아픈 이들을 향해 벌린 두 팔, 그중에서도 유난히 닳아 반짝이는 손끝을 보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치유를 빌며 저 손끝을 붙잡았을까.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손끝을 잡았기에 저리 빛이 날까? 간절한 소망이 모여 금빛 광채가 된 듯한 손끝에서, 나는 수많은 기도의 무게를 보았다. 저 손을 잡은 이들 모두 크리스천은 아니었겠지만, 원수마저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치유자는 간절한 소망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빛나는 손끝을 보며, 나는 아주 오래전 만졌던 또 다른 빛나는 금속을 떠올렸다.
십몇 해 전 대학 병원에서 소아 신경을 공부할 때였다. ‘미국 뇌전증 학회’에 참석했다가 들른 하버드대학, 그곳에서 나는 ‘만지면 이 학교로 돌아온다’라는 전설을 따라 설립자 동상의 반짝이는 발을 슬쩍 만져보았다. 기대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 한 귀퉁이를 그 발등에 묻혀 놓았다. 빛나던 동상의 발을 만졌던 그때의 마음, 돌아가는 길에 맞았던 서늘한 눈바람이 아직도 떠오른다.
병원 건물 뒤편으로 나섰다. 길지 않은 삶을 아쉬워하며 뜨겁게 울어 대는 여름 매미의 안타까움이 발치에 떨어졌지만, 그냥 걸었다. 파란 하늘 사이 흔들리는 나뭇잎들과 말없이 흘러가는 흰 구름이 보였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버드의 빛나는 발은 어쩌면 내가 품고 있던 '성공'이라는 욕망이었다면. 치유자의 빛나는 손은 타인의 '평안'을 향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더 이상 동상의 발에 묻어두었던 아쉬움을 찾으러 갈 일은 없다.
이제는 나의 자리에서, 근심 어린 얼굴로 나를 찾아온 이들에게 오늘 이 바람 한 조각 같은 위안을 나눠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신발에 지금까지 붙어 있던 그 아쉬움은 사뿐히 날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