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_안도의 한숨 아찔한 하루

2부_살리고 싶지 않은 의사는 없다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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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파란 진료실 문이 열렸다. 119구급대원과 힘없이 늘어진 아이를 안은 엄마가 뛰어 들어왔다. 구급대원은 태블릿PC를 보며 다급히 설명했다.

“14개월 된 남자 환아로…”

119구급대원은 환자를 인계했다는 사인을 받은 후 돌아갔다. 다행히 아이의 심장은 잘 뛰었고, 숨도 잘 쉬고 있었다. 열이 나면서 경련을 일으킨 아이였다. 눈이 돌아가고 몸이 꼬이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아이에게 서둘러 수액을 공급하고 혈액 검사를 진행한 뒤 병실로 옮겼다.

겉으로 보기에 아이의 상태는 단순 ‘열성경련’이었다. 대부분의 열성경련은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갈 때쯤이면 자연스레 사라지기에 크게 걱정할 병은 아니다. 하지만 소아신경과 의사인 나는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려야만 했다. 만약 아이의 경련이 30분 이상 멈추지 않는 ‘뇌전증 지속상태(뇌전증 중첩증)’로 이어진다면? 뇌는 순식간에 부어오르고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실제로 ‘뇌전증 지속상태’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열성경련이다. 그때는 항경련제를 투여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중심 정맥을 확보해 약물을 쏟아부어야 한다. 인공호흡기도, 중환자실도 없는 이곳에서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아찔한 상황이,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명확했다.

한동안 대한민국 의료계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16%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로 시끄러웠다. 그 결과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에서는 소아과 의사가 없어 야간 진료를 중단하거나 아예 입원 환자를 받지 않는 곳들이 속출했다. 언론에서만 보던 그 사태가 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지역 종합병원에서조차 받아주지 못한 아이가, 결국 119구급차에 실려서 이 작은 아동병원까지 오게 된 상황. ‘의사가 없다’라는 말이 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경련하는 아이를 보며 공포에 떨었을 엄마도, 갈 곳 없는 아이를 내 진료실에 내려놓고 돌아선 구급대원도, 그리고 나도. 우리는 모두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한숨 끝에 더 큰 불안이 밀려왔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한 의사의 경고가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서’ 죽고 사는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그런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고 있었다.

119에서 응급으로 판단한 환자를 내려놓고 간 일이 이번 달에만 벌써 세 차례다. 한번은 급히 처치해서 대학병원으로 보냈고 두 번은 운 좋게 괜찮아졌다. 다음, 그다음 번에도, 환자와 나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이 구급차 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아슬아슬한 행운에 기대야만 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이 제발 끝나기를. 나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아이를 보러 병실로 올라갔다. 아찔했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지만, 가벼워지지 않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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