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진료실 바깥이 시끄러웠다. 이내 문이 벌컥 열리더니, 축 늘어진 아이를 안은 젊은 아빠가 붉어진 얼굴로 들어와 거친 말을 쏟아냈다. 열나는 자기 아이를 먼저 봐주지 않는다며 접수대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였다. 아픈 자식을 앞에 두고 애가 닳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아마 다른 부모들도 같은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애써 그의 말을 뒤로하고, 책상 위 작은 액자에 적힌 ‘평정심(平靜心)’이라는 글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 둔 마법의 주문이었지만, 이미 빨라진 심장 박동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캐비닛 위에 붙여놓은 ‘불인비인(不忍非人)’이라는 사자성어를 되뇌었다.
불인비인(不忍非人). 630년 전 원나라 말에 쓰인 명심보감에 나오는 경구다. 백행의 근본은 참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에 지혜를 구하는 제자 자장은 사람이 아니면 참지 못하고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非人不忍 不忍非人). 지혜로운 선인도 참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삶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설파하였기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참고 견뎌내는 것에 집중했다.
“탈수가 심하니 수액 치료가 필요합니다.” 내 말에 마뜩잖은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다 말고 축 처져 있는 아이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와 함께 그가 진료실을 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고단했던 하루가 끝났다.
묵직했던 하루를 떨쳐내려, 나는 저녁을 먹고 검도 도장으로 향했다. 세상의 소음에서 피난 온 구도자처럼, 천천히 도복을 갈아입었다. 칼을 겨눈 채 상대방 앞에 섰다.
머리!. 기합 소리와 함께 묵직한 중량감이 정수리에 꽂혔다. 머리를 감싼 보호구를 뚫고 죽도의 충격파가 얼굴로 전해졌다. 몇 번이나 피하려고 이리저리 발을 움직였지만, 여지없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칼날은 속수무책이었다. 무거운 보호구를 벗자,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스무 살의 나였다면, 이기려는 욕심에 어떻게든 칼을 휘둘렀을 것이다.
“관장님, 도대체 머리를 어떻게 쳐야 합니까?”
머리치기는 검도 수련의 기본동작이자 가장 멋진 공격이다. 삼십 년을 충실하게 수련한 7단의 검객은 웃으며 말했다. 내 칼이 왜 상대에게 닿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머리를 치려는 욕심이 먼저 보입니다. 반걸음 물러서거나 다가서며 상대를 살피세요. 그러다 상대가 먼저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 그때 머리를 치는 겁니다.”
상대의 움직임은 보지 않고, 오로지 내 힘과 욕심만으로 한 걸음 뛰쳐나가니 칼이 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드러운 관장님의 그 말은, 아까 정수리에 꽂혔던 죽도의 묵직한 충격보다 더 날카롭게 내 마음에 박혔다.
기분 좋은 땀방울과 숨 가쁜 개운함을 안고 도장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가는길, 나는 소란스러웠던 오늘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평정심’이니 ‘불인비인’이니 하는 글귀를 보고 또 보아도 쉬이 다스려지지 않던 그 마음.
‘참지 못하면 어찌 되는가’라는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모든 것이 파멸한다’고 답했다. 이에 제자 자장은 ‘참는 것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難忍難忍)’이라 탄식했다. 수천 년 전 현인들의 대화가, 아직도 참음이 서툰 내게 그대로 와 박혔다.
오늘 관장님은 내게, ‘상대가 들어오는 그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라’고 가르쳤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거친 말들도 어쩌면 상대가 내뻗는 칼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 섣불리 맞서는 대신, 반걸음 물러서 상대를 살피고 그 순간을 참아낼 수 있다면.
머리치기의 이치를 조금 깨달은 오늘. 내 마음에 부딪히는 거친 말에, 먼저 반걸음 피하고 참아내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