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_몸과 맘을 헤집어 놓은 귀지 하나

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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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

50cm 앞에서 터져 나온 10개월 아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고막을 사정없이 할퀴었다. 39도를 넘나드는 고열과 좋지 않은 기분 탓에 10개월 아기는 그렇게 의사 표현을 했을 거다. 나는 서둘러 진찰을 마치고 수액을 처방했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울음을 뚝 그치고 엄마 품에 안겨 진료실을 나섰다.

아이가 나가고 진료실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내 오른쪽 귀는 물먹은 솜처럼 먹먹했다. 불길한 느낌에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당장 금요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는데, 우리 병원은 설 당일 하루만 쉬고 연휴 내내 저녁 여섯 시까지 문을 열어야 했다.

게다가 연휴 마지막 날인 일요일을 포함한 빨간날에는 나 혼자 모든 진료를 감당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 귀까지 말썽이면 큰일이었다. 명절을 앞두고 어찌나 아픈 아이가 많은지,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다 보니 어느새 저녁 여섯 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무거운 청진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귀는 여전히 먹먹했다. 코를 막고 숨을 내쉬어 귀의 압력을 조절하는 ‘발살바 매뉴버(Valsalva maneuver)’를 몇 번이나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당장 내일부터 혼자 모든 진료를 감당해야 하는 한 주. 어떻게든 버텨내야만 했다. 나는 더 깊어지려는 걱정과 불안을 잠시 덮어두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희망과 달리, 귀의 먹먹함은 연휴 내내 계속되었다. 근무 6일째인 일요일이 되자, 귀에 얇은 막이 씌워진 듯 소리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두꺼운 스펀지 필터를 거친 것처럼 윙윙거리며 울렸다.

“아이가 어제부터 열이 나고….”

아이 엄마의 설명을 알아듣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먹먹한 귀를 안고 8일간의 연속 근무를 마쳤을 때,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발이 30cm씩 푹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설마 그날 울음소리 때문에 소음성 난청이라도 온 건가? 아니면 이제 나이가 들어서….’

온갖 불안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진료를 마치자마자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원장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익숙한 이비인후과 원장님의 인사말조차 윙윙거리며 멀게만 들렸다.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아, 이경(Otoscopy)이 내 귀로 다가오는 동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오른쪽 귀 안에서 작은 이물감이 느껴졌다.

“원장님, 고막에 아주 작은 귀지가 딱 붙어 있네요. 살살 빼볼게요.”

그 말과 함께 무언가 ‘툭’하고 떨어져 나가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켠 듯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내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난 며칠간 내 온몸과 정신을 짓누르던 두꺼운 장막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 조그만 것 때문에 그러셨네요. 이제 안심하세요.”

원장님이 핀셋으로 집어 보여주는 1~2mm 남짓한 귀지 조각. 나는 그 앞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인사했다.

“명의십니다!”

웃고 있는 ‘명의’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선한 바람 소리와 생생한 거리의 소음들 하나하나가 모두 감사했다. 지난 팔 일간 내 몸과 마음을 그토록 헤집어 놓았던 것은 고작 1cm도 안 되는 작은 귀지 하나였다. 그 작은 것 하나에 붙어 있던 걱정은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귀지 덕분에 나는 들을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오늘만큼은, 아이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마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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