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_날아라 번데기

3부_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내일이 되길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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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만화책을 무심코 넘기다 익숙한 그림에 시선이 멈췄다. 종이 고깔에 수북이 담긴 번데기, 그리고 깡통에 그려진 번데기 그림. 그 정겨운 모습에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교 앞 노점상에서 파는 번데기 한 국자의 추억.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고깔에 담긴 뜨끈한 번데기를 한 알 한 알 아껴 먹고, 국물 한 번만 더 달라며 조르곤 했다. “옜다, 더 먹어라.”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국자와 함께 덤으로 얹어주는 번데기 몇 알에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마지막 한 방울의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서야 발걸음을 떼던 그 시절.

그랬던 내가 번데기와 악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무렵이었다. 힘든 실습을 마친 어느 날, 동기들과 포장마차에 둘러앉았다. 연탄불 위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는 번데기탕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생각에 반가운 마음으로 몇 알 집어 먹고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잠시 뒤, 목이 붉어지며 따끔거렸지만, 나는 그저 술기운이 오르는가보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짭짤하고 달큼한 국물 맛에 취해, 나는 번데기 몇 알을 더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용과야, 너, 얼굴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것 같다. 숨차지는 않니?”

“빨리 응급실 가자!”

친구 녀석이 부리나케 택시를 잡았고, 응급실로 들어섰다. 조금 전까지 안주 삼던 내과 3년 차 김 선생님이 내려왔다. 서둘러 주사약 두 가지를 처방해 주셨고 얼마 가지 않아 증상들이 없어졌다.

“용과야, 이제 번데기는 절대 먹지 마라!”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가는 김 선생님께 꾸벅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론 전 세계 10대 혐오식품에 포함되었다 빠졌다 하는 번데기 근처에만 가도 뭔가 몸이 가렵고 기분도 이상해졌다. TV에 나오기만 해도 질겁하며 채널을 돌렸다.

그렇게 번데기와는 담을 쌓고 지내던 어느 날,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에서 누에 몇 마리를 가져왔다. ‘사각사각’ 뽕잎 갉아 먹는 소리가 어찌나 예쁘던지, 플라스틱 통에 귀를 대고 한참 동안 듣곤 했다. 징그럽기는커녕 어느새 정이 들어 ‘반려 누에’가 되었달까. 그런데 얼마 뒤, 그 예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통 안을 들여다보니 누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었다. 뽕잎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죽었다고 했다. 번데기도, 나방도 되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린 작은 생.

그때 문득 ‘잠식(蠶食)’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점차 조금씩 침략하여 먹어 들어감. 누에의 섭식 행위는 생존을 위해 양분을 섭취하고 누에고치를 만드는 일이다. 왜 국어사전은 자연의 순리대로 뽕잎을 갉아 먹은 누에의 방식을 그렇게 표현했을까? 우리 집에 잠시 있었던 누에는 왜 뽕잎을 잠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잠식당하여 사라졌을까?

그 ‘잠식’이라는 단어를 곱씹던 며칠 전,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 소속 간호사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지만,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큰 병원에 뇌혈관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단 두 명뿐이었고, 불행히도 두 사람 모두 수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의사로서 복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의료 시스템의 속살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조금씩 ‘잠식’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신경외과 의사 수가 부족한 탓은 아니다. 인구 10만 명당 신경외과 의사 수는 OECD 평균(1.3명)보다 세 배 이상 많은 4.7명이다. 문제는 그들 중 ‘어려운 뇌혈관 수술’을 할 의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24시간 응급 호출에 시달려야 하고, 높은 사망률 때문에 툭하면 법정에 서야 하는 고된 길을 누가 선뜻 선택하겠는가.

결국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나라의 진료비는 OECD 평균의 66% 수준이며, 고난도 뇌혈관 수술비는 일본의 20%에 불과하다. 이 비현실적인 수가 위에서, 한 명의 의사는 숱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 살인적인 고단함, 그리고 법적 위험까지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낮은 보상과 높은 위험. 이 기형적인 불균형이 필수 의료의 속살을 조금씩 ‘잠식’해 온 것이다. 언제까지 이 모든 것을 의사 개인의 사명감에만 기댈 수 있을까. 이제는 사회 전체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문득 서늘한 질문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내일 당장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뇌출혈로 쓰러진다면, 과연 골든타임 안에 우리를 살려줄 의사를 만날 수 있을까. 의사인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밤, 생각은 꼬리를 물고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꿈결이었을까. 귓가에 ‘사각사각’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뽕나무에 붙어 있던 누에가 푸른 뽕잎을 적당히 남겨둔 채 나방이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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