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끝없는대화 Jun 20. 2021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주말을 보내냐면요

아무도 모르는 나의 48시간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일어나는 유일한 요일이죠.

 엄마가 여행을 다녀와서 부스럭대는 인기척에 잠이 깼습니다. 정말 부지런해요. 평일은 회사를 다니고 주말마다 어딘가를 다닙니다. 더 자려고 십여분을 누워있었는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을 뜨고 시간을 보니 오후 12시 반이네요. 어제 새벽 1시 정도 잤으니 잠이 깰 만도 하군요.


 사실 금요일에 연차를 써서 금, 토, 일 3일째 쉬고 있습니다. 토요일 오전은 목공예 수업을 가느라 일찍 일어났지만 보통 아침에 볼일이 없으면 아주 늦게 일어납니다. 새벽 2시까지 놀다가 12시가 넘으면 일어나요. 고생한 나를 위해 아점을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 먹고, 후식까지 거하게 챙겨 먹고 소파에 누워서 미드나 영화를 봅니다. 배도 부르고 오후 햇살도 사근사근해서 밥을 먹고 세시가 되면 잠이 쏟아져요. 시골 한량 강아지처럼 눈을 부릅뜨고 몇 분간 잠을 참다가 결국 잠이 듭니다. 아무리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도, 잠이 오는 게 신기합니다.

 3~4시간쯤 자고 일어나면 7시 정도 돼요. 저녁을 먹을 시간이 돼서 엄마가 깨웠습니다. 엄마와 또 맛있는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드디어 책상에 앉아봅니다. 자다 일어나서 먹고, 다시 일어나서 먹었더니 해가 졌어요. 어릴 때 아빠가 왜 매일 졸고 있었는지 한심해했는데, 아빠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자지 않고, 앉아서 졸기만 하다니요! 제가 깨워도 화내지 않다니요! 부처가 따로 없었습니다.


 3일째 쉬니 피곤이 좀 가십니다. 드디어 100프로의 완충된 컨디션과 명료한 정신을 가졌습니다. 아주 오랜만이에요.

 평일 퇴근 후의 저는 운동하고 샤워하고, 할 일도 좀 하고, 유튜브를 좀 보다가 자는데, 주말에는 모든 것이 올스탑입니다. 평일보다 몇 배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역시 직장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그냥 게으른 사람이에요. 퇴사하고 강제된 생활패턴이 깨지면 얼마나 더 게을러질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목공예 수업을 같이 듣는 아저씨가 집이 가까워 자주 태워다 주시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갑니다. 어제 따님이 너무 게을러 걱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안 그런 사람인 척 말했지만, 사실 제가 누구보다 가장 게으르답니다. 저를 가로막는 속세의 것들이 없다면 오후에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요, 머리와 몸을 쓰는 것도 최대한 안 하고 싶고요, 저는 5일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다가 배부른 돼지로 돌아가 이틀을 삽니다. 등 따시고 배부른 시간이 가장 좋아요.


 주변 사람들은 모릅니다, 제가 열심히 사는 평일만 보고, 주말에 어떻게 보내는지 굳이 얘기하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일부러 감추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출퇴근 시간에 책도 읽고, 글도 짬짬이 써서 올리고, 퇴근 후에는 운동도 하고, 매주 목공수업도 듣다니!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하지 않다니! 키우는 열몇 개의 화초들도 돌보고, 청소와 정리가 취미라니!


 가능하면 오랫동안 이 48시간의 비밀을 유지하면서 살겠습니다. 사소한 비밀은 아주 짜릿한 것이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사람은 어떻게 살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