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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끝없는대화 Sep 14. 2021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극복과 아동 후원

 여동생이 스스로 세상을 떠난 후, 약 2년 하고도 보름이 흘렀습니다. 긴 터널을 통과하고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아주 멀게 느껴지지만 의외로 얼마 지나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그날 이후 저에게는 아무 일도 닥치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그 사람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종결되고 끝납니다. 모두 제가 느끼고 겪고 움직이고 자처한 일들 뿐이지요.


 반년 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미각 소실, 기억력과 사고력 감퇴, 체중 감소 등을 겪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하려고 수많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고 발버둥 쳤습니다.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도 했지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생에 대한 기억이 매 순간순간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흘러내린다는 공포에 생각을 멈추지 못했거든요.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왜 이리도 단편적이고 보잘것없는 것들만 남고, 꿈이나 취향, 마음 같은 중요한 것들은 남지 않는지 모릅니다.


 정신과 치료와 충분한 시간,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보살핌, 충분한 방황을 겪으면 폭풍 같고도 썩어 문드러진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영악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차단해버립니다. 어찌 됐던 계속해서 살기 위해 입맛은 돌아오고, 체중이 돌아오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 웃기도 하고, 이마에 닿는 햇살과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집니다. 영화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불붙은 심장을 억누르고 눈을 감고 나가던 저는 이제 의식도 하지 못하고 영화를 봅니다.

 무언가가 제 안에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는 시기의 끝이 점점 다가옵니다.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 일상생활로 거의 돌아오더라도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리를 방문해서 뒤흔듭니다. 그저 시간이 치료해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웃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실컷 웃고 울었습니다. 취미로 도예와 목공을 배우러 공방을 등록했습니다. 동생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모두 글로 기록했습니다. 찬찬히 사진들을 살펴보고 백업해놓았습니다. 매일 한 번씩은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했는데, 점점 저의 웃는 얼굴이 자연스러워지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제 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양육자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를 보살피고 잘 지내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독립되지 못하고 성인에 비해 비교적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어린 여동생을 더 잘 돌봐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계속 남아있었고,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자 아동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지파운데이션에서 보육원 아동 한 명이 연결되었고 저에게 환영 책자와 아동의 간단한 소개문이 우편으로 날아왔습니다. 12살의 여자아이였습니다. 웃는 얼굴이 어릴 적 여동생과 겹쳐 보였습니다.


 아이의 소개를 찬찬히 읽고 나서 눈물이 조금 나왔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서야 그것이 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안도의 눈물임을 알았습니다.

 트라우마가 평생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동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려 더 잘해줄 수도 없습니다.  5 원의 무성의한 자동이체가 얄팍하고 속된 죄책감을 완전히 없애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스스로 능동적으로 움직여서 획득한 가능성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동생이 떠나기 전보다 더 잘 지냅니다.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행복이 방문하면 문을 활짝 열고 환영하고, 작은 어려움들이 찾아와도 별 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집니다. 주어진 시간만큼 살고 나서 사는 것이 어쩌면 꽤 괜찮은 것일 수도 있다는 증거와, 이런저런 재밌는 이야깃거리들을 가지고 동생을 만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시간이 아무리 우리를 돕는다 하여도,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구원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습니다.

 힘든 시기와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직접 움직여야 빠져나와야 합니다.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접 찾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워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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