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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Aug 16. 2022

놓치지 않고 함께 가기 위한 길

오롯이 내 삶의 몫을 찾아서  

계절이 있어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던 나름의 여유가 사라졌다. 7월 말.. 좀 이른 휴가를 다녀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비록 덥지도 않고 비가 올 것 같은 어정정한 여름날이었지만, 마지막 여유였다 생각하고 지금은 그날을 회상해 본다.



복직 후 밀린 일보다, 뒤쳐진 시간을 따라가야 하는 하루 일과는 양보다 몸뚱이가 예전의 나를 기억하지 못해서 속도가 더딘 게 문제였다. 남편 역시 나와 속도를 맞추느라 지난 2년간 거의 일을 못해서 요즘은 주말 내내 출근해서 열 일 중이었다. 그래서 우린 찢어져서 휴가를 보냈다.  나와 아들은 부산 친정에서, 남편은 목전에 놓인 일을 처리하느라 집에서 조용히 방콕 했다.   



8월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출근을 했다. 책상에 앉아 급한일을 처리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나의 일과는 브런치 알림을 먼저 보게 되었다.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작년 이맘때 임신을 해서 브런치 북 출간 작가가 되어 보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그렇게 1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아주 아주 더웠던 지난여름.. 심한 입덧으로 결국 머릿속에만 잔뜩 글을 써두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그렇게 흘려보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 한 달 여간의 시간이 있지만, 나의 스케줄 대로라면 작년보다 더 낫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단 하나 나는 지금 임산부가 아니라는 사실..'배만 안 불렀더라면'이라고 수없이 속으로 외치던 1년 전과 달리 엄마라는 아주 큰 변화가 생겼지만 여전히 내 삶의 몫을 누군가에게 내어주면서 나에게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늦은 저녁 마음이 자꾸 걸려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9회 수상작을 보게 되었다. 제목만 훑어보다 딱 한편.. 나의 일상을 파고드는 제목에 이끌여 단숨에 그 작가님의 책을 다 읽어 내려갔다. 너무 많이 웃었다. 그리고 바로 댓글을 달았다. '저 웃다가 방 터져서 아기 깰 뻔했습니다.' 어쩜 이렇게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신선하고 따뜻할까.. 힘을 얻어볼까 하고 읽기 시작했던 내 마음은 오히려 상처만 남았다. 나와는 너무나 결이 다른 작가님의 글을 보니.. 내가.. 과연 가능할까? 수상을 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않지만, 작가랍시고 브런치 북을 쓰겠다 마음먹는 것부터 뭔가 해선 알 될 것 같았다.



혹시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글은 써 보고 싶었다. 포기를 이유삼을 핑계도 없지만, 내가 원해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고, 휴직 중에 매일  이어 붙이기 하던 10편을 마무리하고 브런치 북을 발행하며 출산 이후 가장 뿌듯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바쁠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실은 더 많다. 바쁜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내가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순간..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며 보듬어 주는 그 시간의 몫만큼이라도 나에게 내어주고 싶었다. 비록 내일이 마감이 닥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브런치를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견뎌내고 있는 이유였다. 브런치..



그렇게 8월부터 시작한 나의 이야기는 지난주 겨우 10편을 마무리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번이 아니면 브런치가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렵게 시작했고.. 마무리했다. 무조건 10편 쓰자 마음먹고 시작했지만.. 역시 마음에 안 든다.. 막상 쓰고 보니 별 내용도 아닌 것 같고..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지나간다. 8월 말에 프로젝트에 도전할지 막상 자신이 서지 않는다.  



1편은 설레고, 2편은 뿌듯하고 3편은 고비다.. 남은 게 더 많다는 생각과 포기하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이 공존하며 나와의 결투를 시작하는 시점.. 이기면 4편으로 가고, 지면 며칠 내내 3편에서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 며칠 쳐 박아두다.. 영원히 묻히거나.. 마음이 안 편해 꺼내서 겨우 마무리하면 다행히 오케이.. 5편은 아무렇게 써도 5편 남는다. 잃을 게 없는 원점.. 그러나 남은 건 5편 절반만 쓰면 된다. 6편쯤 되면 지루하거나 억지스레 쓰고, 7편은 마무리를 향한 정점.. 8편은 정리를 한번 하고 싶어 지고.. 9편이 되면 갑자기 아쉽다. 그래서 더 잘 써진다.. 10편.. 제일 어렵다.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서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너무 잘 마무리하고 싶어서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쓰고 싶은 마음.. 그래서 글을 자꾸 쓰나 보다..



결국 나는 마지막 편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마무리에 춧점을 마추다..다음 날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냥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했다. 다행인 것은 나는 뭔가 더 잘하려고 하면 한 글자도 써지지가 않는다. 잘하고 싶어도 별로 가진 게 없어서 인지 꺼내어 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나란 사람은 딱 이만큼이어서 말이다.



힘이 생겼다. 좀 더 일상처럼 글쓰기를 대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처음에 브런치 북 10편은 너무나 긴 여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부족해도 놓치지 않고 내 삶의 몫을 할애하며 함께 가기 위해 나는 브런치를 선택했다. 바쁜 와중에도 스치듯 지나가는 내 인생의 일부가 그리워 짧게 남아 기록하며 글로 만들어 가는 이 시간이 진짜 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육아를 하면서 누군가 때문에 내 삶이 없고 쫓긴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복직을 하면서 같은 출발선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내 선택이 가끔 억울하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누군가는 아직도 작가를 꿈꾸며 브런치를 두드린다는 사실과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셀레이기에 나는 오늘도 내일도 매일 설레고 싶다.. 나의 인생에 다른 누군가도 셀레 인다면 더없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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