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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현 Sep 10. 2020

4천만원은 5천원보다 작다

일상을 지켜내는 오늘 그리고 내일

 오늘 아침 경제라디오 오프닝에서 진행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청취자 여러분, 매일 마시는 5천원 커피 대신에 저축을 해보세요. 매일 5천원씩 저축을 하면 복리로 10년 뒤에는 4천만원이라는 목돈이 생깁니다.’ 오호! 4천만원이라니 엄청난 금액이네. 그리고 나는 아이와 오후 산책길에 우리 동네에서 가장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장님에게 5천원 커피를 샀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원두로 내린.

 어쩌면 내가 포기할 수 없는건 커피가 아니라, 오늘도 지켜내야 하는 일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재난문자도 아침에 듣는 라디오 뉴스도 코로나의 심각성을 알려주지만, 나는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쉬이 끝나지 않을 걸 알았다. 내가 오래 계획했던 일도 잠시 미뤄질 것이고, 친구들 좋아하는 아이도 어린이집 입학을 미뤄야할지도 혹은 포기해야할지도, 실험을 위주로 하는 남편이 재택을 한다는건 아주 많을 걸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아주 복잡하고 뒤엉킨 가까운 미래의 일들이 오늘의 내가 짊어져야할 일상이라는 사실이 화가나고 슬프다.

 은유 작가는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면 책상에 앉아 시집을 꺼내 읽는다고 한다. 헤세는 잠시 내려놓고 정원에서 꽃을 가꾸거나 그림을 담은 편지를 쓴다고 한다. 지도교수님은 생각이 정리가 안될때면 머리를 데우기 위해(이렇게 표현하심) 5킬로미터를 뛰고 다시 걸어 돌아오는 길에 프레첼을 드신댄다.

 나도 시집을 꺼내 읽어볼까. 작은 화분을 사다 이름을 지어주고 매일 살펴볼까. 땀이 날 때까지 뛰고 오는 길에 ...에휴...
나는 늘 해오던 것처럼 아이와 오전에 산책을 나가야지. 그리고 낮잠에서 깬 아이와 오후 산책도 해야지. 잠시 파라솔 밑에서 아이에겐 시원한 보리차를 주고 나는 아이스커피 마시면서 책 읽어야지. 아이가 얼마의 페이지를 나에게 허락해줄지 모르지만. 소중히 간절하게 읽어내야지. 그 순간 그 글들.

 40,000,000 <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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