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좋아할 거 같다며 아이가 핸드폰으로 노래를 한 곡 들려주었다. 제목이 ‘별이 되지 않아도 돼’라는 노래였다. 잠시 일하던 손을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지치고 힘들거든 하늘을 그냥 멍하니 바라보라고 부드럽게 건네는 목소리, 빛나는 별이 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하는 가사. 음, 좋았다. 우리 아들, 이런 감성도 이해할 줄 알 만큼 컸구나.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아이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이 노래를 BGM으로 들으며 저녁을 차렸다.
그날 하루를 대충 마치고 드디어 편안한 숨으로 앉아 있는데 노래가 생각나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았다. 가수 이름이 109라고 나왔다. 109? 이게 뭐더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109를 검색했더니 이렇게 나온다. 자살 예방 상담 전화.
앗, 그래서 본 적이 있었구나. 자살 예방 수업은 의무수업인지라 매년 몇 번이나 아이들에게 번호를 안내했을 텐데. 막상 수업했던 교사인 나는 기억 못 하고 있었다니.
스크롤하며 검색 결과를 좀 더 훑어보았다. 가수 109와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번이 연관이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나의 뇌는 이 둘을 자꾸만 연결했다. 이렇게 말이다. “혹시 좌절하거나 삶이 힘들고 어두워도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요. 별이 되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너무 힘들거든 제 노래를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 주세요. 109.”
우리 집 현관문 비밀번호는 아이가 예전에 상담받았던 상담실 전화번호이다. 주변에 이야기 나눌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아이가 혹시 내게도 털어놓지 못할 힘든 일이 생기면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이야기 나누고 도와줄 분이 계심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만들었다. 아이는 딱 한 번,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상담 내용은 이거였다. “엄마가 게임을 자유롭게 못 하게 해서 너무 힘들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가 공부를 너무 못하고, 게임만 하려고 해서 핸드폰과 컴퓨터 게임을 아예 못 하게 한 적이 있는데, 그 기간이 너무 힘들어서 전화했고, 상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예요.” 그리고 정말 선생님 말씀처럼 시간이 지나서 해결되었다며, 너무 신기하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 만세.
혹시 모르겠다. 너무 힘든 일 앞에서 떠올릴 전화번호 하나가 없는 사람이 있을지도. 그런 맘으로 오늘은 위의 시를 적어 보았다. 나도 나를 위해 기억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사람 일이라는 건 혹시 모르니깐.
9월 마지막이다. 올 초 약속했던 걸 이행하는 날이기도 하다. 3개월에 한 번씩 김주환의 회복탄력성 검사하기. 이 글을 쓰기 전에 컴퓨터 켜자마자 검사지부터 수행했다. 지난 3개월, 내 나름 혼자 힘으로 책도 만들어 보고, 근 몇 년 들어 가장 열심히 뭔가를 하며 의욕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서 혹시 점수가 많이 오르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결과는 뭐 그닥. 6월 점수보다 도리어 4점이나 낮게 나왔다. 이 뭣꼬.
109. 이 번호를 떠올릴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유리멘탈이라도 좋으니 지금 만큼만이라도 살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 올 해가 3개월 남았네. 남은 3개월, 부디 큰일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나가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