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멀리 사는 사람을 도대체 왜 사귀냐?”
내가 이방인 K를 막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질문자의 의도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내겐 전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멀리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사는 것일 뿐이라 답하기도 엄청 쉬웠다. 답하는 사람이 되려쿨하고 묻는 사람이 오히려 진절머리를 내는 물음이었다.
“단거리에 그 사람이 없으니까.”
그가 지척에 살지 않으니 나는 멀리 사는 그를 사랑할 수밖에...
나는 사실 K와 언제 정확히 처음 사귀게 되었는지 모른다. K에게도 딱히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 서로를 마음에 품고 서로에게 속해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기억에도 없는 희미한 처음에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아마 누군가가 ‘언제 처음 사귀었어요?’라고 물으면 서로 마구 다른 말을 해대다 문득 마주친 우리 시선이 머쓱해 씩 웃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사귄 날을 모르기에 1주년 기념일도 없었다. 이것 또한 매일이 기념일이라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1일은 모해 겨울의 어느 날이다. K는 본인이 울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수화기 너머로 훌쩍훌쩍 훔치는 그의 울음소리에 내 모성애가 발동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달려간 그날이 우리의 처음이었다.
그래, 우리가 오롯이 주어진 생을 살다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 둘 앞에서만 울자. 어른이 되었어도 목 놓아 엉엉 울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더라. 그래도 솔직히 좀 창피하긴 하니까 꼭 우리 눈물은 서로에게만 보여주도록 하자. 너는 내 앞에서, 나는 네 앞에서만 서럽게 서럽게 울자. 네 예쁜 두 눈에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내가 먼저 모른 척하는 일은 내 눈물이 짠맛을 잃기 전까진 결코 없을 것을 약속 하마.
사랑이란 거울 앞에 K를 세우면, 모진 삶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지질해진 그의 모습도 안쓰러움으로 반사되어 내 망막에 각인된다. 연민은 때론 사랑할 사람을 선택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다. 나는 사랑이란 창을 쥐고 K의 인생이란 전쟁터에 출전하는 연민의 갑옷을 입은 용병이 된다. 내 당신 인생 속의 모든 아픔을 휩쓸어 버리리. 말도 안 되는 다짐을 진지하게 하는 신입 병사.
내 눈에 비친 K는 세월에 그리고 삶에 쓸린 흉터가 많은 남자였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상처도 그의 마음속에 가득함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스스로를 상남자라 칭하는 탓에 K는 아파도 아프다 말도 못 했다. 약한 구석을 털어놓는 것을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탓에 모든 것을 자기 혼자 짊어지고 끙끙대는 미련한 사람. 상남자도 사람이다. 상남자도 병난다. 상남자도 얼마든지 힘들고 버거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말없이 내미는 내 손을 꼭 잡아주는 K의 맞닿은 찬 손바닥에 온기가 돌았다. 우리는 좀 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쪽이 제 체온을 나누어 미지근한 온도를 맞추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부족분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은 온전히 내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K의 것도 아니었다. 내가 멈추거나 K가 멈추면 우리 사랑도 멈출 테였다. 내가 과하거나 K가 과하면 우리 사랑은 방향성을 잃고 어디로 튈지 모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끊임없는 소통이고, 소통은 서로를 이해해 몰랐던 차이를 찾아내어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다. 다름을 비난과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믿음과 신뢰가 필요했다. K와 나는 자칫 서로의 부재로 인해 관계 속에 스멀스멀 피어날 법한 불안감을 종식시키기 위해 서로의 삶의 패턴에서 항상성을 유지했다. 다른 시간대를 사는 우리는 서로의 아침, 점심, 저녁을 공유했다.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에 K는 출근길에 나서며 자신의 아침을, 나는 침대 위에서 잠들기 전 나의 저녁을 공유했다. 한국 시간 오후 1시가 되면 K는 즐겨하는 게임 이야기로 자신의 저녁을, 나는 학교에서 맛본 급식 이야기로 나의 점심을 공유했다. 한국 시간 아침 7시, K는 퇴근길에 오르며 자신의 오후를 나는 여전히 졸린 눈을 비비며 새로 맞이한 눈부신 아침을 그와 나눴다. 우리는 일상을 나누며 시차를 메우고 나아가 정서적 평화와 안정감을 얻었다.
매년 봄과 가을, K를 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우리의 오작교 역할을 하던 하늘 길이 온 대륙에 창궐한 역병 탓에 뚝 끊겼다. 짧게는 1년을, 어쩌면 몇 년을 못 볼지도 모르는 K였다. 한스럽고 애스럽기 그지없는 우리의 해후상봉은 눈 깜빡이듯 찰나로 스쳐 지나갔다. 사랑이 찢어진 별리의 세월이 시공간을 메웠다. 사랑이란 때론 예상치 못한 어떤 것에 의해 좌절되기도, 종식되기도 또는 특별해지기도 한다. 별안간의 화산 폭발에도 서로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춘 채 재 속에서 숨진 폼페이의 이름 모를 어느 연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매 순간 K의 얼굴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이 다였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그를 볼 수 있다고 기대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하여 나는 미치도록 보기 싫은데도 매일 볼 수밖에 없는 직장 선배의 얼굴에 내 상상으로 만들어 낸 K의 가면을 덧씌웠다. 나만의 생존 전략이랄까. 그렇게 보기 싫었던 그 사람의 얼굴이 내가 사랑하는 K의 모습을 띄고 있으니 마냥 흐뭇해졌다. 그 사람이 어떤 잔소리를 해대도 내 귀엔 K가 불러주던 사랑의 세레나데요, 어떤 지적을 해대도 K가 내게 건네던 수줍은 손길이라 생각하니 얼굴 위에 저절로 떠오르는 미소를 가릴 길이 없었다. 자신을 향해 실룩대는 나의 입꼬리를 본 그 사람은 아마 굉장히 묘한 감정을 느낄 테였다. 속으로 ‘이거 또라이네. 얘는 건드리지 말아야겠다.’ 하지 않았을까? 그럼 나는 더 좋고.
K는 매일 내게 말했다. 명품 백 하나 못 사줘도 괜찮냐고. 나를 밤에 자다가도 생각이나 이를 갈 정도로 싫어하던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박애주의자로 변신시킨 당신인데 그깟 명품백이 비길 바가 있으랴.
우리 돈이 없다고 사랑할 자격을 포기하지 말자.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아무리 많아도 욕심나고 아무리 채워도 모자란 화수분 같은 것. 그 어떤 생명도 바스러져 증발해 버릴 것 같은 뙤약볕 아래의 사막에도 아름다운 구석이 있다. 어딘가 숨어 있을 오아시스의 존재로 인해서. 설사 그것이 눈앞의 신기루처럼 찰나로 스러져도 그 찰나만큼은 황홀경이다. K, 너의 진면목은 겉으로 티가 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마음의 불을 켜고 찬찬히 살펴야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아마 내 눈에만 보일 게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너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같은 것. 세상을 향한 그의 호기심은 어린아이처럼 귀엽기까지 했다. 나는 오아시스 같이 숨겨진 그의 내면을 좋아했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나는 그가 좋았다. 앞으로도 그를 계속 좋아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면 믿었을까. 그의 겉모습이 아무리 누추해도 그의 속 깊은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내 마음은 여전할 거란 걸.
(왜 자꾸 ex를 소환하는 과제가 주어지는지요... 선생님// 글쓴이가 싱글이거나 모쏠일 수도 있잖아여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