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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Nov 25. 2022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해

에세이 연습 과제 20 - 삶의 위기를 헤쳐 온 나를 위로하기


내가 몸 담고 있는 교직엔 벌떡 교사라는 말이 있다. 회의석상에서나 관리자와의 면담에서 부당한 취급을 당하거나 비교육적인 업무지시를 받을 때 불의를 못 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바른말을 하는 교사를 벌떡 교사라 칭한다. 대부분 교직 짬밥 좀 먹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벌떡 교사 역할을 자처할 때가 많은데, 내 십여 년의 교직 생활에 비추어 보면 벌떡 교사 중에서 그나마 사표로 삼을 선배들이 종종 있었다.


나는 80년대 생으로 젊은 세대의 벌떡 교사에 속했다. 내가 처음으로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난 때는 바야흐로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던 2000년대 후반이다. 그때의 나는 앳된 얼굴에 스물네 살의 젊은 미혼 여성 교사였고, 당시 학교의 세출입을 담당하고 있던 직원은 50대 후반의 지역 유지 출신, 기혼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관내에서 악독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내기 교사였던 나를 그녀 삶의 활력을 위한 제물로 삼기로 했는지, 갓 부임한 3월 달부터 말도 못 할 텃세를 부렸다. 교구 구입 기안을 올리면 검토자인 부장의 결재가 떨어졌는데도 협조자인 행정실장의 순서가 됐을 때 어김없이 그녀에게서 호출이 왔다. 그녀는 교무실에 있는 나를 행정실로 불러 꼬치꼬치 캐묻다가 마지막에 정말 인심 쓴다는 듯한 말투로 ‘그럼, 사줄게.’라고 말하기 일쑤였다.


내가 최초로 벌떡 교사가 된 그날도 어김없이 그녀의 호출이 떨어졌다.

“이 쌤, 잠깐 행정실로 와 볼래?”

“교재 연구하느라 바쁩니다. 용건 있으면 직접 오시죠.”

“아... 이 쌤, 기안 하나 올렸잖아. 이거 왜 사는데?”

“수업에 필요해서요.”

“무슨 수업에 필요한데?”

“설명하면 아세요?”

“진짜 수업에 필요한 거라야 사줄 수 있거든?”

“그러니까, 설명하면 아시냐고요.”

“이 쌤이 제대로 설명을 안 한다면 나는 사줄 수 없지.”

“당신 돈으로 사주려 하셨어요? 그냥 학교 돈으로 사주세요. 생색 그만 내시고.”

“뭐? 당신? 지금 너 나한테 당신이라고 했어?”


행정실 주무관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의 끈이 뚝 끊어지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팽팽했을 때쯤, 드디어 일이 터진 것이었다. 행정실 주무관은 그 길로 교장을 찾아가 딸뻘인 내가 자기를 무시한다며 학교가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교무실에 앉아 스산한 바람 같이 불어오는 온갖 괴소문을 대적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통곡을 모두 흡수한 교장이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소파에 앉자마자 교장이 첫마디를 던졌다.


“이 선생님, 학교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부서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학생부와 교무부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학생 교육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틀렸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힘든 부서는 행정실이에요. 세출, 세입 등 나라 돈 쓰는 일이 제일 힘들죠. 그래서 교무실에서 행정실 일을 많이 도와줘야 해요. 행정실 선생님이 이 선생님 때문에 지금 많이 힘들어하는 건 알죠? 아무리 행정실 직원이라도 공직에서는 선밴데 엄마 같은 사람을 딸뻘 되는 이 선생님이 힘들게 하면 쓰나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교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의아한 표정으로 교장이 나의 반응을 유도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죠?' 나는 대답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가 아니시군요. 저는 같은 교사의 입장에서 행정직원의 부당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러 이곳에 온 것이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을 모친처럼 모시라는 소리를 들으러 온 게 아닙니다.”

“뭐, 뭐요?”

“그럼, 이만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모쪼록 투명하게 예산 집행하시어 학교 행정실의 훌륭한 수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교장은 그다음 날부터 3일 동안 병가에 들어갔다. 후배 교사가 무례를 범해 충격을 받았다나... 그 며칠 동안 학교도 뒤숭숭해진 것 같았다. 행정실 편이었던 몇몇 교사들이 괘씸죄를 적용하여 나의 앞날을 가히 걱정해주기 시작했다. ‘초임 때 이미지나 평판이 퇴직 때까지 가는데 참, 싹수가 없다.’ 따위의 말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첫 단추는 어차피 이렇게 꿰어졌다. 그렇다면 나는 더더욱 참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때부터 나는 부당한 지시와 대우는 절대 참지 않았다. 스물넷의 나이에 벌써 벌떡 교사가 된 것이다. 기숙사나 생활관 등 학교 보조시설의 운영 관리와 사감의 근태 관리를 교사에게 시킬 때도 벌떡, 정수 물품 구입 및 관리를 교사에게 떠넘길 때도 벌떡, 병가와 연가 등 법적 휴가를 이유 없이 반려할 때도 벌떡, 41조 연수와 같은 교원 고유의 권한을 허하지 않을 때도 벌떡, 무분별한 호출로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할 때도 벌떡.. 십여 년의 경력을 갖춰 가는 동안 하도 벌떡벌떡 일어나느라 무릎 연골이 다 닳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공황과 우울증이 터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철인인 줄 알았다. 나를 향한 날 선 비난의 비수를 온몸으로 튕겨내며 나는 정말로 내가 철인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나를 순식간에 잠식한 우울증 진단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말이, 풀어내지 못한 스트레스가, 예민해진 정신 탓에 끝없이 이어지던 불면의 밤이 모두 고스란히 내 안에 독으로 쌓이는 사실을 몰랐다. 쌓이고 쌓여 부패해 폭발하고만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고 나서야 이리 쓸리고 저리 터진 내가 보였다. ‘선생님의 신념이나 철학도 중요하지만 건강보다 중요할까요?’ 처음 본 의사의 한 마디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동안 하루만 산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았다. 내일은 없는 것처럼 하루를 불사르며 살았다.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혹사시켰고, 피폐해져 가는 정신을 알아채지 못했다. 우울증에 걸릴 때까지 부러지면 부러졌지 휘지는 않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던 나였다. 영굴부절의 진리를 무시한 결과로 얻은 우울증으로 나는 병휴직에 들어갔다. 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첨예한 대립 각을 세웠던 나에 대한 호와 불호의 평가들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그 대쪽 같은 선생님이 우울증이라고? 그렇게 할 말 다하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못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휴직 기간 동안 마음을 추스르고 돌보는데 힘썼다. 잘 먹고 움직이고 잘 자는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애써 만들어 내며 몸을 적응시켰다. 어느 정도 리듬이 몸에 익고 나서는 여행을 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사회로의 재출발을 정비하는 시간을 보냈다. 복직 후 맞이한 학교의 풍토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전히 부당한 일들은 곳곳에 존재했고, 학교에서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의 유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달라졌다. 하루만 사는 사람에서 일주일은 살아 보는 사람 정도로 변한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대나무가 갈대가 될 수는 없는 법, 하지만 불의를 보자마자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던 불같은 성격이 다소 유해진 건 확실했다. 부당하든 정당하든 일단 지시가 내려오면 일주일은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고 끝에도 정말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의문을 제기했다. 최대한 순간적으로 부딪히는 갈등을 피한 후 내 감정을 살피고 숨 쉴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이었다. 타고난 기질 탓에 매번 잘 되는 건 아니지만, 점점 습관처럼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오랜 기간 나를 알고 지낸 지인들을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늘어놓는다. ‘초임 때 그렇게 이글거리던 이 쌤 눈빛이 다 죽었네. 이제 이 쌤도 늙었구나?’ 늙는다는 건 현실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요령이 생긴다는 뜻 아닐까? 과유불급.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건강을 담보로 몸소 겪어 냈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다, 젊을 적 객기죠. 이제는 힘들어서 그렇게 못해요.’ 그들도 웃으며 응답한다. ‘그래도 이 쌤 같은 사람들 때문에 발전도 있는 거야. 질문하고 항의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그동안 수고했어. 이젠 좀 편하게 살아.’ 그래, 교직에 벌떡 교사가 필요하듯 세상엔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한 법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뿌듯할 때가 많다. 그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잘못 된 것은 잘못 됐다고 말할 줄 알며, 개인주의를 기본적인 삶의 방식으로 삼지만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연대할 줄도 안다. 자기주장이 뚜렷하고 표현적이며 변화와 득실에 민감하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그렇다. Z세대로 통합된 이들이 교직에 들어올 때쯤이면 나는 어떤 선배가 되어있을까? 그때 그 시절 벌떡 교사란 별명이 무색하게 무기력하고 뺀질뺀질한 타산지석의 원로 교사는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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