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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Dec 11. 2022

사랑, 또 사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알랭 드 보통의 데뷔작이다. 무려 그의 나이 스물셋에 쓴 역작이라 할 수 있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겪어 나가는 과정을 직관적이자 철학적 관점으로 풀이한 엄청난 책이다. 보통은 사랑이란 훌륭하고 또 소소한 행위를 유니크한 문체로 풀어내며 무한한 상상과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천재가 아닐 수 없다.


20대 초반에 이 책을 읽으며 느낀 바는 30대에 들어 다시 읽고 난 뒤, 그 이해의 깊이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 같다. 자식이 있다면 그들이 성인이 됐을 때, 이 책을 이렇게 말하며 권할 것이다.


이 책은 유명해도 너무 유명하니까 지금 한번 읽어보고, 나이가 듦에 따라 다양한 로맨스의 경험이 네 인생에 더해졌을 때 다시 읽는 것을 추천한다고...
어쩌면 두 번째 독서에서, 너의 만남 – 사랑 – 이별의 3종 세트를 떠올리며 너도 모르는 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성이 처음 만난 순간의 끌림은 두뇌의 화학적 현상으로 응축된다. 그 후, 내가 반하게 된 상대에 대한 사랑은 외로움이란 공허를 채우는 낭만적 도취를 먹고 자라나리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나 자신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장점과 우월함이 상대에게 있다고 믿어버리는 욕망의 비논리성과 상상력으로 가능해진다. 불안은 사랑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상대가 떠날 것 같다는 불안은 내 행복의 원인이 사라질 것이라는 상황적 불안을 말이다. 때론, 사랑하는 이가 떠남으로써 더 이상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관계에서 갈등을 야기한다. 그리고 이 불안이 만들어 낸 틈은 종종 우리를 실연으로 이끈다.


인간에게는 일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관계 맺기를 강제할 수 없다는 묵시적 동의가 있다. 이 계약 조건 때문에 인연의 끝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될 때도 있다. 그렇게 실연한 자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비난, 슬픔과 괴로움 등 오만가지 감정의 소용돌이가 인다. 그러나 이 감정을 전가할 대상 - 사랑했던 이 - 은 이미 내 곁을 떠났다. 고스란히 남은 감정의 저장소가 되는 것은 자신뿐이다. 실연하고 나면, 어느 정도 스스로를 책망하고 좀 먹는 시간이 꽤나 의미 없이 흐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그 피폐해진 시간의 흐름 끝에서 진리를 얻는다. 사랑은 모순일 수도 있고, 사랑의 시작이라는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간 뒤에는 인간 선택의 영역에 그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는 결코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이 쓰린 짓을 두 번 다신 겪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호르몬의 귀신같은 화학 작용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을 반복한다.   


결국,

우리는,

몇 번의 이별을 겪든,

사랑으로,

사랑이 새긴 상처를 치유하는 사이클 속에서,

또 사랑하며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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