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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 Dec 13. 2022

영모야, 학교 가자!

소설 연습 2 - 국면과 관점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정오였다.


- 아오! 씨발. 미쳤어, 미쳤어. 이제 일어나다니 내가 완전 돌아 버린 게야.


중천에 걸린 햇살이 영모의 퉁퉁 부운 눈두덩을 간지럽혔다. 영모는 휴대폰 화면과 벽걸이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말도 안 돼. 8시 반까지 출근인데... 무려 3시간 반 동안 무단지각 중인 거야? 내가? 출퇴근에 사시미 칼 같은, FM 그 잡채인 이 이영모가?


영모의 머릿속에 어제 한 판 붙은 심 교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토록 자신 있고 당당한 자세로 법 조항까지 들먹이며 교장씩이나 되는 윗사람을 투우사처럼 들이박았는데, 제시간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니... 안 그래도 꼬투리를 잡으려 벼르고 또 벼르고 있을 심 교장에게 당장 나 잡아 잡숴~,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영모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세상 가여운 얼굴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이 빠진 영모의 시선에 책상 위에 놓인 교육 법전이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뒤통수를 치고 들어올 심 교장의 백어택에 방비책을 세우고자 새벽 세시까지 들여다본 교육 법전이었다. 과유불급이었다. 뭐든 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더니, 영모 자신이 꼭 그 꼴이 아닌가? 자기 꾀에 걸려 발라당 넘어진 것 같은 몰골로 영모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안돼!!!!!!


쇳소리를 빽빽 내지르며 영모는 이 모든 책임을 전가할 대상, 아가페적 자식 사랑의 상징인 권 여사를 찾기 시작했다.


- 엄마, 엄마 어딨어? 왜 나 안 깨웠어. 왜... 도대체 why!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권 여사의 모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녀가 남긴 작은 흔적만이 식탁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영모는 권 여사의 쪽지를 집어 들었다.


‘엄마, 우리 두팔이랑 운동장 갔다 올 테니 알아서 밥 차려 먹어.’


개새끼 운동은 빠지지 않고 시키면서 딸의 출근 시간은 챙기지 않은 권 여사의 야속한 한 마디였다. 영모는 솟구치는 화를 누르는 대신 신경질적으로 권 여사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 엄마!!!!!!

- 아이고, 노인네 귀청 떨어지겠네. 왜!

- 엄마, 아침에 나 왜 안 깨웠어. 오늘 나, 못 일어나서 출근 못 했잖아. 심 교장이... 심 교장이 건수 하나 잡았다고 지금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겠냐고! 엄마, 상관에게 개겨서 받은 괘씸죄는 나 같은 하급 관료에겐 무기징역이야. 난 앞으로 벗어 날 수 없는 심 교장의 감옥에서 끊임없이 항소하는 심정으로 맞짱을 떠야 한단 말이야. 그러려면 내 근태엔 그 어떤 티클도 묻어선 안돼. 완벽 그 자체여야 한다고!

- 얘, 웬 엄동설한에 두팔이 고추 얼어붙는 소리니? 정신 차려, 오늘 토요일이야!

- 응?

- 어지간히 해라 너도. 아주 쓸데없는데 꽂혀서 에너지 빼는 건 지 아빠를 빼다 박았어요. 끊어! 엄마, 두팔이 멍푸치노 먹여야 돼.


TGIF, Thank God, It WAS Friday. yeah!!!!!! 영모는 하마터면 덜컹 내려앉을 뻔한 가슴을 쓸어 올리며 침대에 털썩하고 드러누웠다. 가만했던 천장이 영모의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심 교장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이 선생, 허구한 날 워라밸, 워라밸 거리면서 칼퇴하더니, 이게 이 선생이 말하던 워라밸인가? 어제는 컴퓨터에 ‘아름고등학교18’을 쳐 넣더니, 오늘은 황금 같은 주말을 출근 일로 알고 이 난리를 피우나? 이 선생, 집에 가서도 자나 깨나 학교 생각뿐인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그냥 맘 편하게 평소에 초근을 하게. 24/7 이 심 교장만 생각 해대니, 쯧쯧... 날 너무 좋아하지 마시게. 난 이미 남의 남자일세.'


머리를 한 방 크게 얻어맞은 듯 영모의 귓가에 징~하는 소리가 얼마간 들려왔다. 벙진 표정으로 누워 있던 영모가 별안간 정신을 번쩍 차리며 벌떡 일어났다.


- 이래선 안 된다. 이래선 안 돼.


영모는 워크와 라이프 사이 불균형의 사슬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서, 어서 빨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모는 본격적으로 본캐와 부캐 분리 작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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