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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규 Jan 27. 2018

공모전 도전기(9), 찾는 만큼 보이는 축덕

꿈은 ★ 이루어진다는 아이디어

사람들은 저마다 취향이 있기 때문에 고생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취향껏 살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소박한 삶의 즐거움도 발견하게 됩니다.


취향은 사전적 의미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및 경향을 뜻합니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는 '우리의 자기애는 우리의 견해가 비난받을 때보다도, 우리의 취향이 비난받을 때 못 견디게 괴로워한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취향은 한 사람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일지 모르겠네요.


제 취향 중 하나는 집에서 맥주 한 잔 하며 무언가를 즐기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떠들썩한 자리도 즐겁지만, 가끔은 혼자 시간을 보내며 힐링을 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죠. 이 시간만큼은 누구한테도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됩니다.


이 때문에 말의 늦은 밤 집에서 맥주를 마시게 되는 날에는 유럽의 축구 경기 관람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김두현, 이청용, 기성용, 구자철에 손흥민까지... 국내 스타플레이어들이 해외로 진출하면서 새벽 경기를 보는 재미가 늘어났기 때문이죠.




주변에서 축구를 보고 즐기는 소위 '축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 새벽에도 일어나서 경기를 관람합니다. 새벽에도 일어나게 되는 원동력으로 저는 더비 매치(Derby Match)를 손꼽고 싶습니다. 더비 매치란 연고지가 같은 팀(Local Derby) 혹은 라이벌 의식이 있는 팀(Major Rivalry)이 대결하는 시합을 의미합니다.


봐왔 더비 매치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가 붙는 '맨체스터 더비', 손흥민과 이영표가 있어 즐겨 보게 되었던 토트넘 핫스퍼와 강팀 아스날의 '북런던 더비', 이탈리아 최고의 클럽 AC 밀란과 인테르의 밀란 형제 대결인 '밀란 더비(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스페인의 자랑거리이자 세계 최고의 더비 매치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가 있습니다.


한국 K 리그의 서울과 수원의 '슈퍼 매치'도 피파가 손꼽은 세계적인 매치 경기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림 01] 더비 매치 여러 장면들

이러한 더비 매치 경기에 임하는 선수와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 모두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죠. 이러한 이유에는 '문화'라는 역사의 이야기가 한 몫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몇 가지 더비 매치의 사례를 이야기해드릴게요. 같은 지역의 연고지를 두었지만 역사적으로 우익의 중상층과 좌익 노동자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하여 라이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서 제국의 귀족들이 지지한 팀과 하급 장교들이 주축이 된 팀의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구교와 신교의 갈등이 내포된 종교 간의 원인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각 도시를 구성하는 민족 간의 문제가 표출돼 더비 매치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이 서로 엉키며 설켜 살아가며, 봉건제도에 따라 도시 저마다의 문화가 조금씩은 다른 유럽에서는 축구는 인류 역사와 문화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림 03] 한일전 당시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가 걸린 플랜카드

축구를 모르는 분들에게 더비 매치의 뜨거움을 설명하기 쉬운 경기는 아무래도 '한일전'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얽히고설킨 악연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일전은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입니다. 한일전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지면 화가 나서 씩씩 거릴 정도죠.


국가대표 경기에는 감정이 이입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이길 수 없는 경기에서 기적을 일으키면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6월 한 달은 목이 터지도록 응원하고 4강의 기적으로 웃고 울고 한 이유도 하나의 국가와 민족이라는 동질성으로 팀을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작용된 게 아닐까 합니다.


민족주의(民族主義, Ethnicism)로 정의되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민족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타민족 배척하는 이념이라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내셔널리즘은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트린 히틀러의 나치즘(Nazism)과 같은 전체주의를 잉태하기 쉬운 사상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만큼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되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더비 매치를 뜨겁게 만들 이야기를 만들고, 세상에 즐거움을 더해주니까 말이죠. 그래서 국가대표 라이벌전은 총성 없는 전쟁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쟁에는 영웅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 명의 영웅이 전세를 뒤엎고 역사에 남게 됩니다. 더비 매치라는 전쟁에서 기억에 남는 영웅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축구 스타란 이러한 전쟁 영웅이 아닐까요?


박지성이 한일전에서 골을 넣고 산책을 거닐듯한 골 세리머니는 10년이 다 되도록 회자되고 있죠. 이전에는 98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중 '도쿄대첩'으로 회자되는 한일전에서 후지산을 무너뜨린 역전골의 영웅 이민성도 있겠네요.

[그림 03] 박지성 산책 세레머니의 한 장면 *구글 이미지 참조

한 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에 한 명의 영웅만 다뤄질 이유가 있을까? 임진왜란의 성웅 이순신을 다룬 대하드라마를 떠올려보세요. 이순신 곁에는 수많은 군인들과 장교들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모두가 영웅인 셈이죠. 축구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을 진출하기 위해서 한 명의 에이스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박지성과 손흥민 등 영웅이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기억이 나지 않는 많은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착출 되어 합심하고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들은 국가대표 대항전이라는 전쟁에 소리 없는 영웅이 아닐까요? 한 번쯤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 것이죠. 이 생각을 시작으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많은 언성 히어로(unsung hero)의 이야기할 디자인에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친구들과 경기를 볼 때 반복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축구를 아는 친구 경기날 각 팀의 포메이션과 베스트 11, 눈여겨봐야 할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보면 경기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진 경험입니다. 친구의 예상처럼 돌아가는 상황이나, 앞서 이야기 해준 선수를 찾는 재미가 생기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디자인을 통해 선수를 찾는 재미를 주고, 경기에 앞서 간략히 리뷰 할 수 있을 정보를 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축구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친근한 소재인 배너와 카드 센션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림 04] 축구 경기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배너와 카드섹션

이러한 접근을 위해 저는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각 선수의 얼굴을 찾아보는 재미와 함께 각각의 국가대표에 대한 정보를 배너를 활용해서 전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려운 것은 월드컵에 진출할 선수들의 엔트리는 경기 시작 한 달 전쯤 발표하는데 그 선수들의 수가 32개국에 23명이나 됩니다. 거기에 급부상을 입으면 엔트리가 교체되기도 합니다. 한 달 동안 혼자서 캐릭터를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피파 사이트를 통해 월드컵 예선 경기에 1/4 이상 출전한 선수 모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월드컵이 열리기 10개월 전부터 말이죠. 그러면 월드컵 엔트리가 발표난 시간부터 배너에 출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기 구글에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축구 약소국의 언성 히어로에 해당되는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중에 북한이 있었습니다. 당시 2009년에 북한 선수들의 영문 이름을 구글을 통해 검색하면 이미지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북한 사이트에 게재된 이미지인지 사이트로 접속할 수 없더군요. 정말로 자료를 찾는데 애 먹었습니다. (참고로 북한 사이트에 반복 접속을 시도하면 국 기관에서 집으로 연락 옵니다! 조심하세요)

[그림 05] 2010년 월드컵 대한민국 엔트리

고생 끝에 만든 디자인은 간결하고 쉽게 정보를 찾고 보는 경험을 주고자 했습니다. 캐릭터는 단순한 형태로 비슷하게 보이면 재미있을 것 같았고요. [그림 05]처럼 말입니다. 위 그림은 2010년 월드컵 엔트리로 선발된 우리나라 선수들입니다. 이운재, 박지성, 안정환, 박주영, 이영표, 차두리 등 익숙한 선수들을 찾아보세요. 비슷하게 느껴지시나요?


이 디자인은 제게 있어서 32개국 23명의 선수와 한 명의 감독을 포함한 768명 외 사용되지 않은 350여 명의 선수 캐릭터를 만든 대작업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디자인은 방대한 정보와 캐릭터로 4미터 사이즈의 배너에 출력을 하게 되었죠. 이러한 10개월의 노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림 06] 2010 월드컵을 위해 만든 캐릭터와 배너 디자인

선수 캐릭터가 프린트된 배너는 월드컵 기간 동안 시청의 허가를 받고 응원석 근처에 설치를 하여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이 작업은 사실 설명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축구를 좋아해서 만들어보고자 한 이유 한 마디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모전에 제출할 때 억지로 만든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 디자인을 몇 마디로 정리하고 싶네요. 이렇게 말이죠!


혹시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축구를 좋아합니다! 월드컵을 함께 즐겨보고 싶습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스타플레이어와 언성 히어로와 함께 미쳐봅시다!


[그림 07] 시청에 설치했던 디자인의 모습

이 프로젝트는 공모전 위해서 문제의 상황을 찾고, 이야기를 만드는 프레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했었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캐릭터와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10개월 동안 매달린 근성 가득한 디자인이었죠. 그런데 예상외로 다양한 공모전에서 대상과 금상 등을 수상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之者)'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과 노력은 기적으로 이어진다는 경험한 것 같습니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카를레스 푸욜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다 보면 언젠가 생각 이상의 결과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한 번쯤은 끈질기게 도전해보세요. 세상에는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을지라도, 생각 이상의 결과에는 피나는 노력이 동반된다고 하니까요.


*World Championship (2010)

Multiple Owners : -

- 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 Illustration Winner

- Red dot communication 2011, Best of Best

- ADC (Art Directors Club) 2011, Gold Prize

- TDC (Tokyo Directors Club) 2011, Selected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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