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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Dec 01. 2016

마술 부엌 - 노르망디 사과 케이크

                                                                                                                            

햇빛이다. 집안에 햇빛이 일렁이는 아침이다. 햇빛은 사람을 말갛게 하고 말랑하게 한다. 때로 햇빛은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온통 휘저어놓는데 그럴 때면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생각 따로 몸 따로 움직인다. 토스트 두어 장에 계란 프라이, 커피 한 잔이면 될 아침에 밀가루며 버터가 웬 말인지. 이게 다 햇빛이 시키는 일이다. 내 탓이 아닌 거다.



아무리 꼼꼼하게 살펴도 사과 두 알과 버터 125그램, 설탕 반 컵, 황설탕 반 큰 술, 달걀 2개, 밀가루 1컵, 우유 반 컵, 베이킹파우더 1스푼이 전부다. 케이크니까 버터와 밀가루가 들어가고 노르망디 사과 케이크니까 사과가 빠질 수 없다. 재료를 챙기면서도 이게 정말 케이크가 될까 하는 의구심에 식구들이 일어나서 먹을 아침용 케이크라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점이 더해져 마음은 급해지고 느린 손은 허둥대기 시작한다.



사과 껍질을 벗겨내고 한 입 크기로 썬 사과를 냄비에 넣고 황설탕 반 큰 술에 물 1/4컵을 넣고 중간 불에서 10분간 조려 사과가 부드러워지면 건져서 식혀두기. 이건 뭐 어려울 게 없다!



버터와 설탕으로 뽀얗고 부드러운 크림을 만드는 건 내게 아직 난공불락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목의 힘이 약해지는 건지 아니면 꾀가 나는 건지 버터와 설탕을 저어서 크림을 만든다면서 실제로는 버터를 짓이겨 설탕과 버무리는 수준이다. 그렇게만 해도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을 지경이 되어야 겨우 거품기가 돌아갈 정도가 된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서 버터를 냉장고에서 꺼내 두면 충분히 부드러워져서 안 해도 될 수고를 매번 되풀이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랴. 갑자기 만들고 싶어 지면 바로 시작하는 성미니 어쩔 수 없다. 버터와 설탕이 고루 섞여서 부드럽게 되었을 때 계란을 하나씩 넣고 다시 섞는다. 버터크림처럼 보이던 것이 가짜였음이 들통이 나는 순간이다. 차가운 계란이 들어가자 버터가 다시 뭉쳐지기 시작해서 고물고물한 결정이 생기면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식구들이 일어나지도 않은 이 아침에 케이크를 만든다고 이 고생일까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락날락하는데 계란이 두 개니 그 과정도 두 번이다. 



버터와 설탕에 어찌어찌 계란이 섞인 것처럼 보이면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한 꼬집을 섞어 체에 쳐서 섞는다. 반죽을 만들 때는 반드시 커다란 볼에 해야 한다. 밀가루 한 컵에 계란 두 개니까 하고 어림잡아 작은 볼에 시작했다간 중간에 볼을 바꾸는 수고를 분명히 하게 되는데도 여전히 대여섯 번에 한 번쯤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무신경한 사람이 바로 나다. 밀가루가 사방으로 날리고 좀처럼 섞이지 않는다. 도대체 케이크가 만들어지기는 할 것인지 슬슬 불안해질 때쯤이면 신기하게도 섞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우유를 조금씩 부어가면서 계속 젓는다.



참 기특하기도 하다.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럽고 포근한 반죽을 만들다니. 비록 어깨는 결리고 팔뚝은 경련이 일어날 것 같지만 반죽을 만들었으니 케이크는 다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케이크 틀에 반죽을 붓고 사과 조린 것을 얹은 다음 넛맥을 뿌린다. 처음 타샤 할머니의 책을 보았을 때 육두구를 갈아서 뿌린다는 문장에 매혹당했었다. 그때는 육두구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때여서 그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묵직한 향신료일 거라 짐작을 하고 나도 그런 걸 가질 수 있어서 과자나 빵을 구울 때 아끼지 말고 넉넉하게 갈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나중에 넛맥으로 더 많이 불린다는 것을 알았지만 육두구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 넛맥이라 쓰였음에도 고집스럽게 육두구라고 중얼거린다. 듬뿍 뿌려서 180도에 예열한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50분에 맞추었다.



완성된 케이크에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반죽 위에 가득 올렸던 사과조림은 반죽이 부풀면서 아래로 내려가 중간에 콕콕 박혀 있겠지. 황금빛으로 구워진 케이크가 그럴싸하다. 사실 이 노르망디 사과 케이크는 오후에 마시는 홍차와 잘 어울린다고 했지만 난 커피와 함께 아침으로 먹을 요량으로 만든 것이다. 



따뜻할 때, 혹은 실온에 두었다가 신선한 크림을 뿌려 먹으라고 했지만 크림이 없으므로 슈거 파우더를 살짝 뿌려 모양을 냈다.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 햇빛이 내게 준 아침. 은근하게 달고 가볍고 바삭하고 부드러운 아침식사. 때는 열한 시. 그러므로 나는 어제 점심 준비를 면제받았다.




요리책을 좋아한다, 요리책을 뒤적이다가 장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종종 내가 요리책을 보는 이유는 냉장고 정리를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있는 재료야 거기서 거기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쉽게, 새로운 방법으로, 맛있게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 하는 일이 매양 비슷하고 음식도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며칠에 한 번은 새로운 음식에 도전한다.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하는 건 기분 좋은 긴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인데 내가 그 시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느낀다. 비록 데리야키 소스에 조린 닭고기 한 점을 나는 먹을 수는 없지만 닭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 음식이 맛있을 거라는 것도 안다. 



부엌은 신비로운 장소다. 야채 칸에 있던 채소와 꽁꽁 얼어있던 육류들, 이름도 생소한 허브와 향신료와 소금, 후추, 물과 기름과 시간이 모여 힘을 합하면 맛이 만들어진다. 손을 놓으면 점점 하기 싫어지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는 게 바로 부엌이 가진 마법이다. 음식을 앞에 놓고 앉은 이들은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엌에 있던 이의 노고는 알지만 그가 남몰래 즐겼을 희열은 잘 모른다. 밤새 비어있어 조금은 썰렁한 아침 부엌에서 물을 끓이고 감자를 깎으면서 온기를 더하는 일은 얼마나 즐거운지. 김이 나는 냄비, 보글보글 물이 끓는 주전자와 달구어진 오븐의 수다에 끼어있다 보면 불확실한 세상과 어지러운 시절에 대한 염려를 잊을 수 있으니 그건 덤이다. 따뜻해진 부엌은 나의 성소다.  


딱딱하지만 달콤 고소한 콩자반


기말고사 중인 아이가 학교에 가는 시간에 함께 나갔었다. 나갈 때는 돌아오는 시간에 다시 만나 점심을 먹고 들어오려 했는데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면 보통은 혼자 놀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을 즐거워하곤 했는데 오늘은 집에 가고 싶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엌에 있고 싶었다. 오랜만에 혼자서 천천히 장을 보았다. 양손에 장바구니와 가방, 종이 쇼핑백까지 보따리 네 개를 들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왔다고 하면 우리 집을 아는 이들은 왜 그랬냐고 모두 한 마디씩 할 것이다. 하긴 마지막 언덕을 오를 때는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는 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에 접어들어서는 허리가 아플 지경에 이르렀으나 주방 바닥에 짐을 부려놓고 넘어 다니며 육수를 내고 파를 다듬고 두부를 썰었다. 시험 보고 돌아오는 아이와 남편의 도착시간에 맞춰서 두부 젓국과 가츠동을 만들어서 점심상을 차렸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자주 끓여줬던 두부 젓국을 장선용의 '평생 요리책'에서 본 순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결국 오늘 끓일 수 있었다. 엄마가 끓여줬던 것과 똑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나무랄 데 없는 맛이었다. 요리책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버린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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