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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Nov 04. 2017

위로하는 세탁기

 청명한 초가을의 아침이면 엄마는 이불 홑청을 뜯어 머리에 이고 강으로 갔다. 비탈진 강가에는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는 오두막이 한 채 있었는데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의 키 작은 노파가 거기 살았다. 빨래를 삶아주는 할머니였다. 집 앞 공터에는 찌그러진 오두막을 똑같이 닮은 간이 화덕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 커다란 솥이 걸려있었다. 할머니에게 홑청을 넘겨주고 엄마가 작은 빨랫감들을 빨랫방망이로 두드려 빨면 나는 풀숲을 뒤지거나 물장난을 했다. 장작이 타면서 나는 냄새가 빨래를 삶는 냄새와 섞여서 푸른 강물과 함께 흘렀다. 두어 시간 삶아진 빨래는 방망이로 두드려지고 흐르는 물에 거듭 헹궈진 후 거짓말처럼 눈이 부신 하얀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은 빨래는 강가의 바위 위에 널렸고 홑청이 강바람에 나부끼는 동안 거짓말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은 내게는 소풍, 엄마에게는 살림이었고 노파에게는 노동이었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집에 세탁기가 들어온 건 중학교 때였다. 세탁기는 탈수통과 세탁통이 분리된 것으로 완전 수동식이었다. 물의 양부터 세제량, 세탁 시간과 탈수 시간까지 모든 것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고 물이 말갛게 될 때까지 헹굼을 계속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뚜껑을 열어 두어도 빙글빙글 돌아간다는 점이 요즘의 세탁기와 다른 점이었다. 세탁기를 위한 수도꼭지가 따로 있었던 때가 아니어서 물을 받아 세탁통에 붓거나 호스를 연결해 물을 채워야 했던 불편함은 거품이 일어난 물살 속에서 빨랫감이 돌아가는 걸 구경하는 재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을 길어 나르고 세탁통에서 탈수통으로 세탁물을 옮기고 헝클어지고 꼬인 세탁물을 하나하나 풀어서 빨랫줄에 너는 걸 구경하던 이웃집 아줌마는 그까짓 거 손으로 하는 게 훨씬 시원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는데 나는 그걸 이웃집에 세탁기가 없어서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85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합성세제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탁물은 우선 비눗물이나 잿물 속에 몇 시간쯤 담가놓았다가,
힘차게 두들기고 문지르고, 한 시간 넘게 삶고, 계속해서 헹구고,
 손으로 돌려서 짜거나 압착기에 넣어서 돌린 다음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산울타리에 걸쳐놓거나,
아니면 잔디밭에 펼쳐놓고 말려야 했다.”

 빌 브라이슨이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세탁과정이다. 고된 노동이라 모두가 기피하는 임무였기 때문에, 종종 하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 세탁실로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세탁부가 하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신분이라 모습을 드러내는 것조차 허용이 되지 않아서 고용주들은 세탁하는 하인들을  마주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옷과 침구를 하인들이 세탁하는 모습을 보게 될 때 혹시라도 느꼈을지도 모르는 불편함도 생겨날 여지가 없었다. 단순하지만 힘들고 고된 일, 누군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나 대신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지지난 세기의 이야기다.



 요즘 세탁기는 똑똑하다. 일반적인 세탁물 외에 울과 실크, 아기 옷, 이불, 기능성 의류 등 세탁물의 종류와 양에 따라 각각 다른 코스로 빨래를 한다. 얼마 전에 새롭게 장만한 우리 집 세탁기는 표준 코스를 설정하면 물 온도 40도에 헹굼 횟수 2회, 탈수 세기는 강으로 설정되지만 그 모두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묵은 때를 뺄 수 있는 불림 기능도 있고 삶는 코스도 있다. 예약을 해 놓으면 정해진 시간에 자기가 알아서 세탁을 시작하고 마친다. 세탁이 끝나면 끝났다고, 일정한 시기가 되면 세탁조를 청소하라고도 알려준다. 세탁이 끝난 세탁물을 건조해주기도 하니 이 정도면 완벽한 세탁부다. 남편과 아이는 빨래는 세탁기가 알아서 다 해주니 편하겠다고 주부인 나보다 더 즐거워하는데 그 이면에는 빨래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세탁실은 남향이다. 볕이 세탁실 타일 바닥에 내려앉는 오후에 세탁기 버튼을 누르고 잠시라도 그 앞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물이 흘러내리고 거품이 일고 빨래가 돌아가면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동작들은 적확하고 거침이 없는 데다가 규칙적이어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정해진 시간만큼의 세탁 후에 어김없이 헹굼과 탈수가 이어진다. 세탁코스들의 예측 가능한 단순함을 좋아한다. 세탁기 앞 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보면 세탁기 돌아가는 것처럼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잘 돌아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의 줄리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좁은 주방의 냄비 앞에서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 불안한 세상에서 재료를 넣고 정해진 시간 동안 저으면 맛있는 초콜릿 크림이 만들어진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말할 때의 그녀처럼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고 가라앉는다. 세탁기에게 위로받는 생활인 것이다.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제 몫을 다하는 세탁기는 그러나 그것만 할 수 있다. 세탁물을 나누고 세제의 양을 계산하고 섬유 유연제를 넣을지 말지 선택하는 건 세탁기에게는 능력 밖의 일이다. 뒤집어진 양말들을 바로 하고, 주머니 속의 사탕껍질과 공처럼 뭉쳐진 티슈 등을 꺼내며, 세탁이 끝나면 털어서 빨랫줄에 널어 말릴 것과 건조기에 말릴 것들을 나누는 건 나의 몫이다. 빨랫줄에 널고, 걷고, 접어서 제자리에 갖다 두는 일도 마찬가지다. 세탁을 하는 동안 생길 수 있는 사고는 대부분 이 과정에서 생긴다. 오랜 시간 물에 담그거나 뜨거운 물에서 세탁하면 안 되는 것들, 건조기에서 말릴 수 없는 것들, 물이 빠져 단독으로 세탁해야 하는 것들이 잘못해서 다른 코스의 세탁물들과 섞이면 낭패다. 간혹 사이즈가 줄어들어 인형 옷처럼 작아진 스웨터나 푸르게 색이 변해버린 스타킹 한쪽, 타월에서 떨어져 나온 보풀들이 잔뜩 묻어 털어지지 않는 바람에 결국 다시 세탁해야 하는 진한 색의 셔츠 등이 나올 때도 있다. 입을 모아 세탁기 예찬을 펼치던 식구들이 변할 때는 바로 이때다. 옷이 줄거나 늘어지거나 색이 변하면 식구들은 왜 나를 쳐다보는지 모를 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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