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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28. 2017

부엌에 숨다

숨바꼭질하는 어른



 숨바꼭질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야 뻔했다.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 중 가장 무능한 술래이자 가장 빨리 들켜버리는 아이였다. 술래를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할 때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술래가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술래가 싫다고 생각할수록 술래는 내 몫이었다. 친구들은 숨을 곳을 잘도 알았다. 굽어진 골목길, 담벼락에 붙은 굴뚝 뒤, 열린 대문 뒤쪽이나 평상 아래로 숨어 들어가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이고 숨도 죽였다. 내가 눈을 감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는 동안 친구들이 몸을 감추면 우리들이 놀고 있던 공터나 골목길 주변에서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소리마저 사라졌다. 눈을 뜨자마자 그 고요와 막막함을 헤쳐나가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워서 나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 거였다. 그뿐인가 운이 좋아 술래를 면했어도 두근거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숨어있는 것 역시 어려웠다. 움직여도 안되고 소리를 내서도 안되었다.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꼭꼭 숨었다고 생각했어도 어느새 술래는 내 등을 탁 치고 ‘잡았다’를 외치기 일쑤였으니 어지간히 굼뜨고 느렸던 유년이었다. 사실은 술래가 하기 싫었던 것만큼 숨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술래가 나를 찾아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얼른 들켜버리는 게 나았다. 그건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가능했고 술래에게 잡히는 순간 나는 다시 자유로워졌다.




 

 크리스 캐슨 마덴의 ‘그 여자의 방’은 여자들의 온전한 휴식 공간에 관하여 말한다. 책머리의 추천글 중에 미국 여성의 절반가량이 욕실을 가장 완벽한 휴식공간이라고 했다는 문장이 있다. 욕실은 시끄러운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모두 닫고 복잡한 일상의 요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책의 본문에서야 미국 내 성공한 전문직 여성들이 꾸민 자기만의 공간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에 관하여 말하고 있지만 사실 보통의 주부들은 뭉친 몸과 마음의 근육을 자신을 위해 꾸민 방이 아니라 공용공간인 욕실에서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풀어낼 수  있으니 자기만의 방이 없어도 너무 우울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렸다.


그러나 하루는 얼마나 길며 드러내지 않아야 할 감정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문을 닫고 자신을 격리시켜 얻을 수 있는 순간의 편안함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남편과 아이의 시선, 때로는 나 자신에게서도 숨을 곳이 필요하게 된 내가 숨었다는 걸 들키지 않은 채 숨을 곳으로 제일이라 여기는 곳은 바로 부엌이다. 도대체 누가 부엌에서 야채를 다듬고 마늘을 다지는 주부에게 뭐 하느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12월에 결혼을 했다. 남편이 초등학교 때부터 살았다는 오래된 주택의 북쪽에 부엌이 있었다. 난방은 없었고 조명은 약했으며 순간온수기가 있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연탄아궁이 위에 올린 냄비에서 나오는 더운 김이 온기의 전부였던 시댁의 부엌에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홀로 섰다. 온수기 작동법을 잘 몰랐던 탓에 찬물에 접시와 컵들을 문질러 닦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면 붉어진 손등이 부끄러워 무릎 꿇고 앉은 다리 밑에 손을 밀어 넣어 감추었다. 담요가 깔린 아랫목은 따뜻했고 거기에 식사 후의 나른함이 더해져서 몽롱한 기운마저 감돌았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그곳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누군가 물심부름이라도 시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몰랐다. 휑뎅그렁하니 넓어서 더 추웠던 부엌에 있으면 숨쉬기는 편했으니까.




 

 아이가 서너 살 무렵에 살던 집에는 미닫이문이 달린 부엌이 있었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식사 공간이 따로 있어서 나 이외의 다른 식구들이 부엌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평소에는 문을 열어두지만 손님이 있을 때는 예외였다. 음식을 만들어 그릇에 담고 뒷설거지를 하는 동안 문은 닫아 두었다. 문은 무겁고 빡빡해서 가볍게 열리지 않았으므로 누군가 갑자기 필요한 게 생겨서 부엌으로 들어오려 한다 해도 나는 그 혹은 그녀가 문에 손을 대는 순간부터 문이 열리기까지 어질러진 싱크대와 표정과 태도를 재정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손님 접대를 하다가도 부엌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놓여남의 기쁨을 즐겼다. 그건 술래에게 잡힐 염려가 없는 숨바꼭질이어서 스릴은 없었지만 그만큼 안전하기도 했다.




 

 지금의 주방은 거실과 이어져 닫힌 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 훨씬 노련해진 나는 그곳에서 편하게 숨 쉬며 함께 있는 이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내 속의 엉키고 들끓는 감정들이 마음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욕실에서 너무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면 궁금하기 마련이지만 부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법 오래 있어도 무얼 하는지 묻지 않는다. 모습을 드러내고도 마음을 숨길 수 있어 쓸데없는 오해나 의문을 불러일으킬 염려도 없다. 




 

 살림은 반복이다. 매일매일, 계절이 지나가고 해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일을 맡아 해내는 마음도 그날이 그날 같을 거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평온해 보이는 날들 사이에 억울하고 서운한 날, 막막하고 허전한 날, 이유 없이 불안한 날들이 간혹 양념처럼 끼어든다.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너무 빨리 완성되지 않아 느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음식들을 만들면 좋은 날이다.  생강 한 무더기를 얇게 저며 꿀에 재우거나 밀가루 반죽을 하고 사과를 조려 애플파이를 굽는 일 등이 맞춤이다. 물을 끓여 유리병을 소독하고 사과를 나박나박 써는 모습이야 누가 보든 자연스러운 주부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내 속에서 어떤 집을 짓고 무너뜨리는지 얼마나 되풀이하는지는 짐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싱크대의 서랍들을 정리하고 양념통들을 채우며 접시들을 쌓아 올리고 행주를 헹구면서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 얼마나 허전한지 조금씩 잊는다. 애써서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가끔은 고요와 평안이 우선이라는 걸 아는 때문이다. 단순 명쾌한 동작의 반복이 가져오는 진정 효과는 확실하고 식구들은 여전히 내가 궁금하지 않다. 혼자 하는 숨바꼭질이 끝나갈 무렵이면 생강청이 몇 병 만들어지거나 파이가 완성된다. 이토록 완벽한 숨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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