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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Oct 21. 2017

전업주부입니다

 

  친구의 입에서 ‘귀여운 여인이 되고 싶어요’라는 문장이 나오는 순간 교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놀란 것 같았다. 귀여운 여인이 어떤 여인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친구가 내놓은 대답은 ‘사랑 없으면 못 사는 여인’이었다. 선생님은 피식 웃음을 흘렸고 아이들은 자지러졌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물었는데 지목을 받고 일어난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들은 대부분 직업에 해당하는 단어들이었다. 교사, 의사, 작가, 판사, 대통령, 군인 등 다양한 직업들이 나열되는 중에 나와 나란히 앉아있던 친구 차례가 된 것이다.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우리는 열일곱 혹은 열여덟 살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아마 조금 덜 자랐는지도 몰랐다. 




 

 당시 나는 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러시아 작가들에게 푹 빠져 지내고 있었다. 마침 안톤 체호프의 단편 ‘귀여운 여인’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녀가 뜻하는 바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성공이나 출세를 의미하는 다양한 단어들 사이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친구의 목소리는 생경하게 들렸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란 질문에 미래의 직업이나 모습을 말하는 대신 사랑하며 살겠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으니 어쩌면 같은 교실에 앉아있던 누구보다도 그 질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는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던 순간의 놀라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의 말이 가져온 파장이 너무 컸던 탓인지 더 이상 지명당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자신은 ‘귀여운 여인’으로 살겠다고, 가능하면 집에서 아이 키우고 살림만 할 거라고 하던 그녀는 그때부터 귀여운 여인으로 불렸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더니 금세 아이 넷의 엄마가 되었다. 전업주부다. 나 역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원한 것이고 나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 뿐. 





 그녀가 첫 아이의 손가락을 햇볕에 비춰보며 그 투명함이 언젠가 사라질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는 엽서를 보낼 때 나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직장에 다녔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놀러 온 그녀가 내가 내놓은 딸기를 앞에 두고는 딸기는 왜 껍질을 벗길 수 없을까란 기상천외의 말을 하거나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잔류농약을 제거하는 방법들을 나열하는 걸 듣고 있으면 하필 그녀와 그녀의 아이 앞에 딸기를 담은 접시를 내어놓은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었다. 밖에서 만날 때도 아이를 업고 나왔다. 그녀는 아이를 업은 채 옷을 고르고 아이를 어르며 마트에서 찬거리를 샀다. 서점에서 영어 교재를 사는 나를 보고 공부는 해서 뭐하냐고 묻더니 내가 버스를 갈아타며 영어학원에 다니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가버렸다. 몇 년 후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나도 전업주부가 되어있었다. 나는 종종 친구라면 이럴 때 어땠을까를 생각했으며 가끔은 그녀도 일상을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으로 불평을 잠재우고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종내 그녀를 잊었다. 





 집안일은 끝이 없다. 종류도 많고 시간도 품도 많이 든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건너뛰기가 안 되는 일들이다. 큰 맘먹고 손을 놓으면 그다음 날에 정확히 두 배의 일거리로 되돌아온다. 식탁에 차려진 건 접시 두어 개에 불과해도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서너 배의 그릇과 도구가 필요하고 만든 음식보다 더 많은 양의 식재료 찌꺼기가 남는다. 매일 정리해도 매일 어질러지고 매일 빨아도 세탁물은 넘쳐난다.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지만 손을 놓으면 당장 표가 나는 기이한 일이다. 거품을 구름처럼 만들어서 설거지를 한다. 물을 세게 틀어 놓고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헹군 접시들을 나란히 늘어놓거나 마른행주로 물기를 없애 쌓아 올린다. 볕이 좋은 날은 한 조각 햇살이라도 놓칠까 아쉬워서 서둘러 빨랫감을 모으고 종종 요리책을 뒤적여 새로운 레시피를 고르기도 한다. 단순하고 손에 익은 일들이 주는 수월한 성취감과 안정감을 누리는 생활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잊은 적은 없다. 분명히 어딘가에 뭔가가 숨어있는 것이다. 세탁기 뒤나 싱크대 서랍, 행주를 접어 담아 놓은 바구니 안 어디에 매일의 작은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욕심의 찌꺼기들이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주부다. 다른 직업이 없으니 전업주부요.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니 불량주부다. 남의 세상이 좋아 보여 한 발을 넣었다가 낯설고 두려워 발을 빼는 겁쟁이고 잠시 훔쳐본 그곳을 잊지 못해 동경하고 흠모하는 욕심쟁이다. 편안하고 정결한 공간을 꿈꾸고 온기 어린 식탁을 꾸미고 싶지만 여전히 집을 벗어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어떤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전업주부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직업을 묻는 각종 양식의 빈칸에 주부 외에 다르게 쓸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신에 대해 종종 어처구니없다고 여긴다.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싶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보내는 유화적인 속삭임과 시선을 못 이겨 매일 참고 대충 넘어가며 못 들은 척 입을 다문다. 가끔 우울하고 가끔 행복하다. 행복할 때는 잊었다가 우울할 때 불러내는 기억 속의 ‘귀여운 여인’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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