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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문숙 Jan 06. 2024

책 읽기 좋아하는 할머니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번외편


   새벽 다섯 시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늦여름의 새벽이 밀려 들어온다. 풀벌레들이 극성인 모양이다. 밤새 잠들지 않은 밤벌레 소리에 간간이 일찍 일어난 매미와 새들의 울음소리가 합세해 숲의 새벽이 가득 찼다. 밖은 아직 어두운데 빗소리를 배경으로 밤과 아침이 뒤섞인다. 침대 옆 스탠드의 불을 켜고 더듬더듬 안경을 찾아 쓰고 지난밤 읽다가 놓쳐버린 책을 집어 들고서 읽기 시작한다. 키티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레빈이 모스크바를 떠나와 시골의 영지에서 농부들과 풀을 베는 장면이다.


  레닌은 오랫동안 베어 나갈수록 더욱 자주 무아경의 순간을 느끼게 됐다. 그런 때에는 이미 손이 낫을 내두르는 게 아니라 마치 낫 스스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에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요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 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데도 일이 정확하고 정밀하게 저절로 되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3부 중에서

   

  책에서 읽은 풍경 속에 내가 있는 듯했다. 푸르스름한 새벽에, 비에 젖은 나뭇가지 틈에 숨어서 길게 우는 새처럼 내리는 비에 옷을 적시고는 미끄러지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비록 레빈처럼 풀밭에서 팔베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완벽하게 새벽의 풍경과 시간에 배어든 것 같았다. 몰입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창 밖의 이른 아침을 통째로 지배하는 듯한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오랜만에 경험하는 읽기에의 몰입, 레빈처럼 말한다면 내게도 드물게 찾아오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나를 채운다. 점점 소란스러워지고 복잡해지는 도시를 떠나 시골 작은 집으로 이사한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할머니] 속의 할머니처럼. 나는 분명히 지난밤에 양팔 가득히 책을 안고 이 방으로 왔다. 창문을 한껏 열고 베드 테이블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읽던 책과 그에 연결되는 책, 공책과 연필과 물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도록 준비를 하고 드디어 읽기 시작했던 것까지 명확하게 기억한다. 종일 바삐 움직였으므로 잠들기 전 몇 시간 동안 책 속에서 마음대로 헤매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몇 페이지나 읽었을까? 처음에는 베개를 쿠션 삼고 기대앉아 읽기 시작하지만 곧 고개를 떨구고 졸다가 놀라 깬 후 몇 줄을 읽는 것이 고작이다. 같은 일을 몇번이고 되풀이하다가 결국 테이블을 치우고 눕는다. 누워서 책장을 넘기다가 책을 몇 번 떨어트리고 기어이 그대로 잠들기. 매일 정해진 순서다.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읽을 수는 없었던 할머니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할머니가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한 건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막상 이사를 하고보니 시골의 삶 역시 단조롭지 않아서 예상했던 것만큼 시간이 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건데 눚게나마 할머니의 바람이 이루어져 다행스러웠느냐고 묻는다면 안경 너머 반짝이는 눈동자, 환하게 미소 짓는 입가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대답이 곧바로 나오지 않으니 한 번 두 번 다시 책을 펼쳐 읽어볼 수 밖에 없다.


  할머니는 말이 많지 않다. 할머니 곁의 동물들도 조용하다.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유난히 조용하고 순하고 느려 보인다. 그들도 할머니만큼 나이가 든 것일까?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림 속, 폭염과 가뭄에 시달리거나 장마로 떠내려가는 장면마저 얇은 베일로 가려진 듯한, 혹은 멀리 보이는 건너편의 풍경처럼 아스라이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혹시 꿈속의 이야기인가? 아니라면 누가 누군가에게 전하는 이야기일까? 아, 옛날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

 

   “옛날에 말이야. 책 읽기를 몹시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었어. 책을 너무 읽고 싶어서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갈 정도였지. 시골은 소란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으니 책 읽을 시간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단다. 시골집은 가보니 엉망이었어. 나무 벽은 손질해야 했고 창문틀도 떨어져 뒹굴고 있었지 뭐야. 게다가 집 밖에도 일이 많기는 마찬가지였어. 봄에는 봄의 일, 여름에는 여름의 일이 있었지. 과일들은 기다려서 익거나 떨어지는 법이 없었단다.


   할머니는 책이 정말 읽고 싶어서 어디엘 가든지 책을 곁에 두었어. 이삿짐 중에서도 책이 제일 많았지. 밭에서 쟁기질을 하면서도, 어린양에게 우유를 주면서도, 양의 털을 깎는 중에도 책을 떼어놓는 법이 없었어. 그렇지만 책을 오래 읽지는 못했단다. 끊임없이 할머니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벌어졌거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누군가 할머니 곁에서 수군대는 것 같았지. 아무렴. 책을 읽는 것보다는 어린양을 돌보는 게 더 급하지 않니? 책은 나중에 읽어도 되지 않을까? 책만 읽으면 과일잼은 누가 만들지? 이렇게 말이야.  할머니는 얼른 일을 해치우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재빨리 해치웠단다. 간절히 바라는 게 있으면 사람은 보통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는 법이지.


   가을이 깊어가더니 드디어 겨울이 왔어. 할머니는 집 안팎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마쳤어. 드디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거야. 할머니는 기뻤어. 그런데 너무 피곤했어. 책을 읽기에는 너무 지친 거야. 이제야 시간이 났는데 말이지. 밭일도 끝내고 과수원의 수확도 마무리했고 봄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서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노곤했어. 집안은 따스하고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지. 동물들도 모두 들어와 할머니 곁에 있었거든. 그런데 할머니는 이제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책을 읽는 대신 잠을 자야 했어.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할머니가 읽고 싶었던 책들의 제목이 적힌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고 주변에는 새의 깃털, 마른 나뭇잎과 작은 돌멩이들이 굴러 다녔지. 동물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단다.”


  난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할머니]를 내 이야기로 읽었다. 매일 읽기를 욕망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외출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것도 책이고, 갖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책이고, 아침에 제일 먼저 손에 잡는 것도 책이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 책이다. 그러나 정작 많이 읽지 못한다. 조용한 시간이 되면 이번에는 지친 몸을 이겨내지 못하고 잠에 빠져 버리는. 본문의 첫 페이지에는 촛불을 밝힌 주방에서 동물들에 둘러싸여 미소 지으며 책을 읽고 있는 할머니의 그림이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할머니가 주인공이지만 정작 할머니가 읽고 있는 모습은 첫 페이지의 그림이 전부다. 책을 볼수록 첫 페이지의 그림은 마지막 페이지의 눈을 감은 할머니가 꾸는 꿈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 에세이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의 원고였으나 편집과정에서 제외되었던 원고입니다. 좋아하는 그림책이라 늦게나마 브런치에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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