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를 지어 배회하며 울부짖는 공포의 포식자. 우리나라에 호환(虎患)이 있다면, 유럽에는 빨간 망토 소녀(Little Red Riding Hood)를 삼켜버린 늑대가 있습니다. 우리 민속 문화에서 산신(山神)으로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던 고독한 호랑이와는 달리, 서양 문화에서 늑대는 무리 지어 다니는 습성 때문에 교활한 포식자로 그려지곤 하지요. 늑대가 빨간 망토 소녀의 할머니를 잡아먹고 꾀를 내어 변장한다는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렇잖아요. 그 누구도 늑대를 변호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릴 적 이불 속에서 이모가 들려주는 빨간 망토 소녀 이야기를 듣고 저도 늑대가 미웠으니까요.
증오의 대상이 된 늑대는 유럽에서 개체 수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인간이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서 18~19세기에 걸쳐 대대적인 늑대 사냥에 나섰고, 도시화가 급속하게 전개되면서 늑대 서식지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늑대는 농가의 가축을 공격하고,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식자로 여겨졌으므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정부는 늑대를 사냥할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포획을 장려했습니다. 또한, 숲이 농경지와 아스팔트가 깔린 도시로 전환되면서 초식 야생동물 같은 늑대의 먹이 자원도 감소했지요. 그래서 한때 인간을 위협했던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하고 맙니다.
한반도에서 사라진 호랑이처럼 늑대도 유럽에서 곧 사라질 운명이었으나, 유럽경제공동체(EEC) 역내에서 1979년에 베른 협약(Bern Convention)이 체결되고 서식지 지침(Habitats Directive)이 발효되면서 늑대가 살아남았습니다. 이 협약과 지침에 따라 늑대는 '엄격히 보호되는 종(strictly protected species)'으로 분류되어, 개체 포획 및 사냥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다만, 특정 조건하에 늑대가 인간이나 가축에 위험을 끼칠 경우 예외적으로 사냥이 허용될 수 있었지요. 극적으로 '늑대를 위한 변호사'가 나타난 셈입니다.
1970년대는 인류가 환경 보호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때부터 많은 선진국에서 환경 보호를 위해 정책을 수립하고 국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1972년, 인류가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스웨덴 스톡홀름에 모여 유엔 인간환경회의(UN Conference on the Human Environment)를 열었고,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도 지구의 날(Earth Day) 행사를 통하여 많은 시민이 대기오염 및 수질오염 해결과 멸종 위기 동물 보호를 당국에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 환경보호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설립되어 환경 규제와 보호를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지요.
이런 노력 덕분에 유럽에서 늑대의 개체수가 지난 20년 동안 많이 회복하여 2만 마리에 육박했고, 유럽연합(EU) 역내 23개 회원국에서 다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늑대가 생태계 복원과 종 다양성 증진에 기여하며 '최상위 포식자(apex predators)'로서 생태적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환경 보호론자들은 늑대의 생환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이들은 늑대가 사슴, 멧돼지 등의 초식 동물 개체수를 조절해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나아가 이러한 동물들이 과도하게 번식해 나무나 다른 식생을 훼손하는 문제를 방지한다고 주장합니다. 늑대가 먹잇감 무리에서 병든 개체들을 공격하여 먼저 먹어 치워서 인수공통감염병 전파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주장도 나오지요.
하지만 늑대의 활발한 번식을 두고, 도시 사람들과 농민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늑대가 민가로 내려와서 가축을 공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농촌 주민들은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매년 약 6만 5,000마리의 가축이 늑대에게 희생되는 것으로 보고되며, 이는 전체 가축의 0.1%에 달합니다. 특히, 농민들은 늑대와 마주칠 일 없는 도시의 정책 결정자들이 늑대가 초래하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농민들을 희생시켜 가며 늑대 보호 정책만을 강행한다는 불만을 쏟아냅니다.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늑대 개체수 통제를 위한 신속한 행동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농촌에서 유권자 마음 잡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늑대의 보호 수위를 '엄격히 보호되는 종(strictly protected)'에서 '일반보호종(protected)'으로 낮추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하네요.
유럽인들의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전망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부터 지리산 반달가슴곰 종 복원 사업을 시행하였고, 현재 반달곰의 개체수는 약 80마리 이상으로 많이 증가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반달가슴곰이 지리산뿐만 아니라 덕유산, 백운산 등지에서도 발견되며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특히, 등산로에서 곰과 마주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등산객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고, 곰이 인근 농가의 농작물을 훼손하면서 인간과 직접적인 접촉을 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지요.
인간과 야생동물의 조우는 인간이 자연을 침범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입니다. 리암 니슨(Liam Neeson)이 주연을 맡아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더 그레이(The Grey)》가 생각나는데, 주인공이 알래스카에서 석유회사 직원들을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맡았던 모습이나 영화 후반부 잠깐 나오는 벌목 현장은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야생 동물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잘 그렸습니다. 결국 되살아난 늑대가 앞으로 인간과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앞선 글에서 언급한 튀르키예의 들개 사례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오만한 결정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