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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05. 2024

세계를 품은 두니야 사유 글방

이름 없는 프리랜서 기고자의 이야기 공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 단 5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시물 아래에 붙을 줄 알았던 이름 자는 온데간데없고 연구교수라는 감수자 이름만 다 된 에 숟가락 하나 딱 얹어놓듯 적혀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원고에서 토씨 하나 안 바뀌고 그대로 올라가는데도 말이죠. 일을 알선해 지인에게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따져 물었는데, 계약 조건상 원래 그렇게 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한술 떠, 그제가 썼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도 된다고 합디다. 박사급 연구원이 적는 게 원칙이라나요. 그래서 놈의 박사 학위를 따서 이름 당당히 걸고 한 번 써보겠다며 대학원에 들어왔습니다.


외국학 전문 연구 기관을 표방하는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정체성이 잘 담긴 조형물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갑작스러운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운영기관이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면서 저 같은 프리랜서 외주 노동자에 돌아가는 일감이 크게 줄었고, 그마저도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AI) 기술에 잠식되고 있습니다. 5년 가까운 세월, 작성한 원고만 모아도 박사 논문 몇 권은 족히 나올 법한데 출판 이력 하나 만들지 못하고 도태되고야 마는 현실에 마음 한구석이 아렸습니다. 그래서 진입 장벽이 낮은 글쓰기 플랫폼인 얼룩소오마이뉴스에 송고(送稿)하며 이름 없이 사라지는 기고자의 한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간 업무상 틀이 정해진 딱딱한 글을 적느라 못다 한 이야기들을 브런치에서 담담하게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품은 두니야의 사유 글방」이라는 매거진(이하 글방)을 개설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이름을 걸고 일반에게 공개되는 보고서 형식의 글을 생산하다 보니 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허구한 날 남의 글만 앵무새처럼 받아 적는 데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사견(私見)을 배제하고 주로 확인된 사실만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권위 있는 관료나 국외 전문가의 발언 외에는 어떠한 인용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글방의 현판에 이 작은 공간의 정체성이 살며시 드러나 있듯이, 어린 시절 지구본을 품에 안고 세계를 꿈꿔왔던 저의 경험과 사유(思惟)를 거쳐 솟아오르는 생각의 단편을 독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매거진의 이름을 두고 정말 많이 고민하면서 여러 번 손 본 끝에 '글방'으로 정했습니다. 원래는 제가 네이버와 티스토리에 개설하여 운영해 온 '세계를 품은 두니야 랩'이라는 블로그에서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려고 했는데, 연구소(랩)라는 낱말을 현판에 박아놓는 게 어느 순간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기성 이론이나 연구 방법론에 입각하여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여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연구 성과물을 내놓을 게 아닌데 연구소라고 달아 놓으니, 연구소가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을 가벼이 여기고 그럴듯한 포장으로 독자를 현혹하여 사기를 치려는 잡배(雜輩)가 되는 것 같아 죄책감으로 마음 한구석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의 견해 및 자료를 인용할 때는 링크를 달거나 인용 주석을 표기하여 원천을 밝혀두도록 하겠습니다. 글방은 어릴 적부터 묻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이 마음에 그득했던 저의 글 짓는 공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명칭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니야(dunia)는 인도네시아어로 세계라는 뜻입니다. 아랍어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페르시아어, 터키어, 스와힐리어, 하우사어, 말레이어, 우르두어를 비롯한 무슬림 세계 언어에서 세계, 세상, 속세, 현세 등 다양한 의미로 쓰입니다. 각 언어에서 뜻과 용례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두니야는 우리말로 '세(世)자'가 들어가는 낱말로 옮겨집니다. 이 가운데 인도네시아어의 dunia와 터키어의 뒤니야(dünya)는 영어의 world, 프랑스어의 르 몽드(le monde)에 대응하는 세계(世界)라는 뜻을 지닙니다. 제 글방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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