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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Aug 10. 2023

쌍무지개

 어제 곳곳에서 쌍무지개가 떴다. 단체 카톡방에서도, 활동 중인 몇몇 카페에서도 무지개 사진이 보였다.

 '내일 태풍 온다고 했는데...'

 의구심을 안고 보게 된 사진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더욱이 요즘 보이는 큰 구름과 주황빛 황금빛이 섞인 석양을 등지고 무지개가 떠 있으니 눈으로 직접 보았다면 얼마나 더 예뻤을까?


 그리고 오늘은 기상 예보대로 태풍이 왔다. 많은 비를 뿌리고, 크고 작은 인명 사고를 내며. 어제부터 나는 '가장 아름답고 나서' 올 먹구름을 생각했다. 그리고 거꾸로, 가장 어둡고 나서 올 찬란한 빛도.




 요즈음의 나는 가장 눈부신 때와 칠흑같이 어두운 때 중 어디쯤 서 있는가를 떠올려본다. 자잘한 걱정과 인간관계에서의 부딪침은 있지만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거나 위험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매사 애쓰고 있다. 열심히 놀고, 친구를 소중히 하고, 나를 아낀다. 그러므로 가장 밝게 빛나는 순간은 아닐지라도 아침의 어슴푸레함 정도는 될 것이다.


 낮에 만난 영주가 딸들에게 나중에

 "엄마는 아빠를 무척 좋아했는데, 아빠가 화 내면 너무 무서워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

 라고 말해주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 어쩌면 나의 짐을, 나의 고통을 딸에게 지우지 않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자주

 "내년에 아이가 학교 들어가면 휴직 안 하셔도 돼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아이를 키우지 않으므로 휴직도 할 필요가 없지만 내가 이혼했단 사실을 모르는 상대 선생님께 그저 "휴직은 못할 것 같다"고만 답하고 있다. 양육비를 꼬박꼬박 보내려면 휴직을 하기 힘들다는 뜻이니 크게 틀린 대답은 아니다.


 누구든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많이 힘들 때, 꼭 이 어둠이 곧 물러가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꿋꿋이 계속 살아나가서, 후에 다시 떨어질지언정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경이를 누렸으면 하고 바란다. 아직도 세상과 인생을 잘 모르긴 하지만, 다가올 많은 좋은 일과 어렵고 힘든 일이 결국 모두 다 과정이라는  더 이상 맞서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어제 잠시 뜬 쌍무지개처럼 살아가는 길이라 믿는다. 그처럼 삶이 아름다우려면 어딘가에 세게 부딪혀 푸르뎅뎅해진 멍도, 무엇을 향해 뜨겁게 타오른 심장도 다 한 번씩, 혹은 두 번씩은  겪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지개는 비가 온 다음에 비로소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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