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주희 Nov 29. 2023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집

 내게는 들어간 지 4년 가까이 되어가는 독서 모임이 있다. 여기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고, 소중한 친구도 만났기에 이곳의 의미는 무척 크다.

 어제 이 독서모임의 채팅방에서 어떤 분이 우리나라 연령별 기혼자 통계를 공유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20대 때 결혼을 하고, 인구 중 가장 많이 기혼으로 편입하는 시기는 35세 정도였다. 표를 보며 나처럼 이혼하여 기혼에서 이탈한 사람의 수치도 포함된 건지 궁금했다.


 모임대다수가 미혼이기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졌다. 비혼이사람들이 요즘 들어 갑자기 결혼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비싼 집값을 감당하려는 수단의 하나로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고 했다. 모임원 중 한 명은 실제로 채팅방에

  - ㅎㅎㅎ 진짜 공동 명의로 집 사서 평생 하우스메이트(남편 X) 해줄 사람 구하고 싶은 심정...

 이라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누군가와 같이 사는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화는 다시 혼인 신고를 하면 받을 수 있는 각종 세제 혜택과 아이를 낳았을 때 받는 실질적인 금액, 그리고 그로 인해 혼자 사는 사람이 받는 역차별로 흘러갔다. 취업을 한 첫 해 나는 시드니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년 불꽃놀이를 보며 그 불꽃놀이가 열리는 오페라 하우스가 내려다 보이는 집에는 어떤 백만장자가 살까 궁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애 셋 낳은 가족'이라는 답을 들었때는 무척이나 놀랐다. 당시 호주의 복지 정책에 대해 지나치다는 비판을 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조금씩 그와 닮아가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사람이 늙는 가장 큰 이유가 주거 불안이라고 한다. 그러니 안정적인 집에서 살기 위해 결혼까지 고려하는 현 세태도 나오게 된 것일 테다. 하지만 '집'이 더 이상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는 나의 경우에는 오로지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도 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안도의 마음도 잠시, 저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공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를 믿고 미래를 약속하는 평범한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아보았다. 같은 과정을 더 해 볼 필요가 있을까? 거기서 오는 희망과 절망을 충분히,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진하게 경험했다는 사실은 채팅방의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었다. 마치 만 년을 산 도깨비가 온갖 일을 다 보고 겪으면서 나중에는 웬만한 세상사에 무뎌지고 관심이 없어지듯이 말이다.


 쌓이는 채팅을 주시하지난날의 내가 그들에 비해 무척 무모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무모함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중에는 그만큼 또 아프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절로 내 결혼 생활로 돌아가 당시의 기억을 쓰다듬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떠올릴 때마다 쓰라린 부분은 도대체 언제 나을 건지, 책이든 대화든 계기가 생기면 마치 어제 처럼 다시 따가워져 온다. 가족을 이루어 살며 알게 된 기쁨과 슬픔, 그건 다시 누군가를 믿고 마음을 여는 데 있어 파도가 들이치는 높은 절벽에 혼자 바람을 맞고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결혼 생활의 고단함과 육아의 힘겨움을 직접 겪지 않고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맞닥뜨릴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잘 모르고' 결혼했다 이혼한 나 자신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그마저도 '잘했다'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다.




 지난주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미리 과 비타민을 챙겨 먹었는데 결국 누런 콧물과 기침이 나게 되었다. 피하려 해도 앓게 되는 이 감기처럼, 운명에 휩쓸렸다는 진부한 핑계를 대며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에게 누군가가 그저 좋아서 좋아할 수 있는 순진함이 남아있기를. 남들은 한 번도 안 해본 결혼을 때가 되면 다시 고려하 무모함이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내 가슴 어딘가 죽지 않 살아있기를. 마음으로 주고받는 사랑을 아직도 믿는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언젠가 반드시 증명해 보일 수 있기를, 겨울의 초입에 피할 수 없던 감기를 세차게 앓으며 묵묵히 마음으로 바라본다.


 때가 되면 지금 뛰어내리지도 못할 정도로 높아 보이는 절벽이 해운대 백사장 정도로 낮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번 용감하게 들어가 따뜻하고도 축축한 바다에게 온몸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역시 난 늘 너에게 가고 싶었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보통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