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쫓는 이와 폭풍을 아는 이
하늘이 순식간에 검어진다. 마디 굵은 비가 쏟아진다. 후두두둑, 게릴라성 강우다. 재활용 쓰레기들을 모아 놓은 분리수거장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지나가는 비일 것이다. 검은 구름이 새파란 하늘 조각들을 다시 뱉어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사를 떠난 세대에서 내놓은 오래된 가구들, 부서진 전등, 여행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은 낡은 가방, 유행 지난 그릇들, 고장 난 가전제품, 쓸모를 잃어버린 물건들 사이 커다란 액자 하나가 눈에 띈다. 테두리 금박이 군데군데 벗겨진 먼지 낀 액자 속 화관을 쓴 신부와 핑크 넥타이로 한껏 멋을 부린 신랑이 웃고 있다. 액자의 낡음이 사랑의 낡음은 아니겠지만 버려진 것들 사이 화사한 미소는 낯설다.
무언가를 버리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의 쓸모를 생각하느라 신문지 한 장 제대로 버리지 못하니 커다란 웨딩 액자를 버리는 일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빛바랜 사진 속 드레스도 신부 화장도, 헤어스타일도 구식이라 벽에 걸어두기 민망하다. 그럼에도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지 못한다. 액자는 언제부터인가 늘 거기 존재하는 것, 사실상 벽지가 되어가고 있다.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라이너 쿤체’의 시‘두 사람’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나는 별을 쫒는 이었고 남편은 폭풍을 아는 이였다. 닿을 수 없는 별을 쫓기 위해 몸부림쳤고, 가끔씩 길을 잃었다. 내가 별이라 생각하며 쫓아왔던 것들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별을 단념하지는 않았지만 무작정 별 빛을 쫓는 무모함은 버렸다. 폭풍을 아는 이는 여전히 노를 젓고 있다. 폭풍은 예고 없이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그 폭풍을 지나 ‘인생의 끝’이라 부르는 항구에 안착해야 한다.
웨딩 액자 속 신부의 서글하게 큰 눈이 숙모를 생각나게 한다. 숙모는 끊어질 듯 가는 줄기, 하늘거리는 꽃잎을 지닌 코스모스를 닮았다. 숙모는 늘 조용하고 말이 없었다. 본래 성격이 그러했는지, 생계에는 무관심한 당숙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해서인지 알 수 없다. 무명 화가였던 당숙은 열심히 전시회를 열었지만 그림이 잘 팔린다거나 유명해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숙이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벌기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오롯이 먹고사는 일은 숙모의 몫이었다. 당숙은 별을 쫓는 이었고 숙모는 폭풍을 아는 이였다. 누군가는 별을 쫓더라도 누군가는 폭풍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당숙이 새하얀 종이 위에 정갈한 수묵화를 그리는 동안 숙모는 웃음을 팔아야만 했다. 수묵이 번지던 새하얀 종이는 어쩌면 해쓱한 숙모의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숙의 화실은 금남로에 있었는데 집에 들를 때마다 갓 튀긴 튀김들을 사 오셨다. 물감 하나 사기에도 늘 쪼들렸을 그가 조카들을 위해 엄청난 양의 튀김을 사 온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아마도 내가 유독 그 당숙을 기억하는 것은 기름 묻은 갈색 봉투 안에 종류별로 담겨있던 튀김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숙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동명동 집에 들르는 횟수가 줄었고, 어쩌다 한 번 들르는 날엔 눈이 움푹 꺼지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른, 얼굴은 흙빛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화실을 정리하고 항암치료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세상에서 사라진 이름이 되었다. 남은 생을 혼자 살아가기엔 너무도 젊었던 숙모는 폭풍을 견뎌줄 누군가를 찾아 떠났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 해 가을 상사화가 필 무렵 용천사에 들렀다. 약간씩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촉촉하게 젖은 돌담, 그 아래 새빨간 상사화가 요염하게 피어있었다. 초록색 가는 허리가 시리도록 눈에 박혔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서둘러 내려가는 길, 세련된 아웃도어를 입은 중년 남녀가 올라오고 있었다. 풍채 좋은 남자를 대충 보고 그 옆의 여인을 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그녀는 바로 내 어린 날 기억 속 코스모스 숙모였다. 호리호리한 몸, 갸름하고 여윈 얼굴, 모자를 썼지만 쏟아질 듯 커다란 두 눈이 들어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세련된 그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코스모스 숙모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생이던 나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테니 어른이 된 모습과 연관시키기는 어려웠으리라.
숙모는 훨씬 우아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코끝이 싸했다. 경제적으로는 무능해서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먹고살았지만 예술에 대한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당숙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그가 종이봉지가 터지도록 가득 담아온 튀김 조각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갓 튀긴 튀김의 온기가, 바삭한 소리가, 고소한 냄새가 상사화 핀 절 집에서 당숙의 이미지와 겹쳐 떠오르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유년의 뜰. 지난날의 온갖 소리와 냄새들이 넘치도록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와 코스모스 숙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돌아보았다. 당숙의 수묵화가 망막에 번지고 있었다. “내 몸은 병들어 시드는데 아내가 자꾸만 꽃으로 보이니 그것이 더 고통이어요.”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던 당숙의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액자 속 낯모르는 부부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낡은 액자틀, 빛바랜 사진처럼 사랑도 퇴색과 낡음의 과정을 반복했으리라. 누구에게든 퇴색과 낡음의 시간이 있게 마련이니 벽지가 되어가는 액자도 어쩌면 여전히 진행 중인 사랑의 표식 인지도 모른다. 축복 속에 항구를 떠나던 첫 날을 돌아보고 쉼 없이 노를 저으며 표류했던 지난날의 흔적들을 떠올린다. 세월의 흔적을 항해 일지에 남기면서 여전히 우리들의 별빛을 쫓아가고 있다.
검은 비구름이 새파란 하늘 조각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언제 폭우가 쏟아졌냐는 듯 다시 해가 쨍하고 떴다. 비에 젖은 나무는 초록 향기를 품어내고 있다. 싱그러운 풀 내와 흙내가 뒤섞인 화단. 그 새 빗물이 만든 작은 연못 위로 솜사탕 구름이 떠있다. 분리수거장에 유폐되었던 나는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다 멈춰 선다. 재활용 더미 속에서 웃고 있는 부부와 눈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사랑이 액자처럼 버려진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