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
부모님을 위해 거창한 한 상을 차릴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대학 졸업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결혼 후 큰 아이가 돌이 되기 전 갑자기 돌아가셨다. 결혼 초기, 남편과 나는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를 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주말이 되면 신혼집으로 왔고 나는 직장과 친정집이 가까워서 퇴근 후에 친정집에 들려 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신혼집이 신혼집 같지 않았다.
친정집은 늘 정갈했다. 거실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맨들거렸고 청록색 가죽 소파는 늘 광택이 났다. 싱크대와 부엌, 베란다 심지어 창틀까지 엄마는 날마다 닦았다. 친정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방금 새로 입주한 집처럼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친정엄마는 무언가 정리되지 않는 것을 싫어하셨다. 모처럼 내 집에 오시더니 정리부터 시작하시는 엄마. 엄마는 직장 일 때문에 자주 치우지 못해 짐이 쌓여있는 뒤 베란다를 보시고는 손수 치우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베란다 정리를 하는 사이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냉동실에서 소고기를 꺼내 야채와 섞어 소고기 죽을 쑤려고 하자 엄마는 그냥 집에 가서 먹는다며 서둘러 가셔 버렸다. 너 바쁜데 그거 하려면 시간 간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친구들을 초대하기 좋아하셨다. 어린 날 나와 동생은 서울 약국 앞에 서서 우리 집을 찾아오는 아버지의 지인들을 모셔 오는 일을 도맡아 했다. 커다란 상을 3개 정도 길게 붙여놓고 하얀 종이를 길게 깔았다. 그 위로 놓이는 음식들, 화려하고 거대한 접시들, 아버지 친구나 직장 동료들에게서 동명동 집 음식 맛은 꽤 유명한 전설처럼 회자되곤 했다. 그 많은 음식을 혼자서 준비했을 엄마의 수고로움을 이제야 깨닫는다.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가는 일인지를 아버지는 아셨을까, 지인들에게서 듣는 공치사 한 마디와 엄마의 노동이 등가 관계에 있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고민해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때의 아버지는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소고기죽을 끓이려고 내놓은 소고기를 다시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 그때 서둘러 나가시던 엄마를 억지로라도 붙잡고 소고기 죽을 끓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한다.
신혼집 뒤 베란다 정리를 해주고 가신지 몇 개월 안 되어 엄마는 성당에 다녀오시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생신을 챙길 날도, 엄마를 위해 거창한 한 상을 준비할 일도, 괜찮은 레스토랑에 모시고 갈 일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엄마를 위해 소고기죽을 끓여드릴 날은 세상에 수없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단 한 번도 엄마를 위해 끓이지는 못하였다. 찹쌀을 불려 전복죽이나 소고기죽, 닭죽을 끓일 때면 늘 그때 생각이 난다.
“엄마 저녁 먹고 가. 나도 혼자 먹어야 하니까.”
일부러 붙잡기라도 했을 것을 그냥 막무가내로 나가시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던 철없던 내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 그러고 보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무슨 음식을 좋아했는지도.... 결혼이라는 통과 의례를 지나 겨우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때 부모님을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직장, 육아 등등 오직 나와 관련된 일만 신경 쓰기도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은 늘 살아계셔서 언제든 내가 무엇이든 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기다리지 않음을....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 그것은 먼 미래, 어느 날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이 흐르고서야 깨닫는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은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