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다음' 신호등이 켜지는 일은 몇 번이나 될까?
도로에 가을이 묻어있다. 도로에 가로수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생각한다.
오늘 아침의 색은 오렌지빛 노랑이다.
아마도 내일은 갈색 빛 노랑이겠지.. 아마도 그다음은 조금은 더 칙칙한 갈색빛 짙은 노랑일 것이다.
거리의 색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도로를 달린다.
도로를 달릴 때 중요한 것은 신호를 지키는 일, 전방을 주시하는 일, 끼어드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는 일, 속도를 준수하는 일, 안전거리, 횡단보도, 보행자 주의.... 주의해야 할 일은 수없이 많다.
초보운전자 일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직진일 뿐. 차선을 바꾸려 할 때는 온몸에 식은땀이 나곤 했다. 지금은 앞 차의 움직임만 보아도 그 차가 어느 쪽으로 갈지, 옆 차가 차선에 바짝 붙어 오면 곧 끼어들 예정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속도와 신호... 우리에게 삶의 속도와 삶의 신호를 알려주는 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의 속도는 점점 과속처럼 느껴진다. 젊은 날엔 시간이 더디 간다고 생각했다.
'되어짐'을 바랐다. 무언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젊음이 버거웠다. '되어감'보다는 '되어짐'을 선택하고 싶었던 날들... 그때도 분명 분주했지만 지금처럼 삶의 속도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상을 살았고 그 일상은 젊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삶의 속도를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갔다. '되어감'을 바라지만 점점 무언가로 '되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가 바라던 것인지 바라지 않던 것인지... 가끔 멈춰서 생각하고 싶지만 그 멈춤의 시간마저도 빠르게 지나간다.
누군가 '당신은(삶의) 속도 릉 위반하셨군요. 좀 더디 가게 해드리지요."라고 말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의지와 무관한 시간들이다. 물론 심리적인 시간이야 길거나 짧지만 하루가 지나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내 의지대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교차로에서 준수 속도는 60, 속도위반 신호위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초록 등이 켜져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 게다가 바로 앞 차 유리에는 초보운전이라고 커다랗게 적혀있다.
신호가 떨어질 때 통과하기가 아슬아슬해 보인다.
물론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될 일이지만.....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아슬아슬하게 걸린 신호에서 다음 신호를 기다릴 때는 유난히 시간이 긴 것처럼 느껴진다.(물론 안전을 위해서는 현명한 일이지만)
초보운전자의 차가 느릿느릿 교차로에 진입했다. 내 마음과 달리 30으로 서행하고 있다. 그래도 어찌할 것인가
문득 삶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초록불이 켜진 신호. 통과해야만 하는 신호다. 그러나 속도를 위반하거나 추월해서는 안 되는 것..... 딜레마처럼 여겨진다. 통과에만 주안점을 둔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통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켜야 할 것들이 있다는 사실. 그 지켜야 할 것들은 통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
도로의 운전자는 이번 신호를 놓치면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는 '다음' 신호등이 몇 번이나 존재할지 알 수 없다. 삶에도 '다음'신호등이란 것이 있을까?
삶은 유한한 것이고 유턴 불가한 것이니....'다음'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일회적인 삶에서 '다음'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기회가 얼마나 될지 생각해본다.
점멸하는 불빛. 깜박거리는 것들 사이에서 '다음'이라는 말에 생각이 멈춘다.
초보운전자의 차를 따라 서행한다. 아슬아슬하지만 다행히 통과했다.
속도를 위반하지도 않았고 신호를 위반하지도 않았다. 신호와 속도를 지키며 '오늘'이라는 삶 속으로 들어갔다.
느리지만...... 느리지 않았다. '다음'신호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