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씨즐 SIZZLE 23화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라고

장자가 말했다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제 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목수 윤 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책입니까?”

“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감히 목수 따위가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 편이 말하기를

“신은 제 일 즉 목수의 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 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강의> 장자의 소요 편 / 신영복 -


나는 책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개념이 단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데 있으니 좋아한다가 아니라 책이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정도로 좋아한다. 책꽂이의 책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자꾸 자리다툼을 하고 신간들에 밀려 오래된 것들은 뒤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책들은 끝없이 태어나고 있다. 불황이라 해도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여전히 책을 구매한다. 쌀이 육신을 위한 양식이라면 책은 나에게 정신을 위한 양식이니.... 어쩌면 쌀과 책은 나에게 동의어다. 생존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나도 책을 내기 위해 무언가를 쉼 없이 궁리하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적어도 세상에 나올 내 책들은 잘 팔리는 책은 아니더라도 부끄러운 책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심정으로.

‘독자’ 즉 ‘책을 읽는 이’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단어가 또 있을까? 쓰는 일이 취미일 때는 좋지만 그것이 직업이라거나 그것이 어떤 결과물을 양산해야 할 때는 부담스러운 의무처럼 느껴진다. 독자는 읽어야 할 권리를 지닌 자들이다. 여전히 독자로서의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쓰는 이로서의 나는 조금은 행복하지 않다. 무언가를 써내야 하는 자는 고통을 품게 마련이다. 빈약한 것들로 무언가를 대충 채워내는 것은 책에 대한 모독일 것이고 고통 없이 태어난 책들은 결국 또 하나의 찌꺼기가 될 것이니까.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라고 장자는 말했다. 아무리 책에 적힌 대로 이론에 충실하게 수레바퀴를 만든다 하여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손짐작과 마음으로 터득한 기술을 넘어서지는 못할 것이다는 의미다.

우리가 누군가가 적어놓은 것들에만 의존하여 그것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정수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찌꺼기들만 얻는 것이리라. 옛사람이 진정 전하려는 바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읽는 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책을 읽어 왔지만 나의 독서 수준은 여전히 옛사람의 찌꺼기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쓰는 일도 읽는 일도 부단히 반복하다 보면 ‘옛사람의 찌꺼기’에서 벗어나 정수에 다가서는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일지 모르는 그 날을 위해 나는 오늘 또 부단히 읽고 쓰고 있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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