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꿈에는 두께도 넓이도 깊이도 없어야 한다
한 때 나는 핸드폰 주소록에 vip급에(?) 해당하는 전화번호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인지과학연구소 연구원. PD. CEO, 00 전문병원 원장, 교수, 호텔 경영인, 방송작가, 여행전문기자, UN사무총장 후보, 유네스코 문화재 반환 위원.... 수시로 김 PD , 송교수, 박 여행전문기자와 통화를 하였다. 누가 내 통화기록을 열어본다면 화려한 인맥을 가진 줄 알 것이다. 다양한 경력의 다양한 사람들의 전화번호일 것 같지만 그들은 이제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솜털 보송한 학생들의 전화번호다. 예를 들면 '00중2 김 00'으로 저장하는 대신 '김 PD 님‘으로 저장해 둔 것이다.
그들의 꿈을 내 휴대폰에 심어두는 것. 살다 보면 꿈에 다가가기보다 꿈에서 멀어지기가 더 쉽다는 것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되지만 그들은 그리 되지 말기를 바랐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살아가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들의 넓은 미래, 헤아릴 수 없이 넓은 미래가 네모난 교실, 네모난 공간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이 두려워진다.
오래전 나는 학교의 모든 네모난 것이 싫었었다. 네모난 교탁과 네모난 구령대, 네모난 운동장... 지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월요일이면 조회라는 명목으로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고 반별로 줄지어 섰던 경험. 앞에는 담임이 서고 그 뒤는 반장이. 그리고 반원들이 늘어선 월요일 아침의 풍경. 그때는 몰랐는데 돌아보면 참 삭막한 풍경이다. 줄지어 서기. 길들이기. 어쩌면 그것은 일제 35년의 잔재 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꿈에는 규격이 없어야 한다. 높이도 깊이도 넓이도 두께도.... 그러나 어느 순간 정해진 틀에 꿈을 끼워 넣게 된다. 허황된 것보다는 현실적인 꿈의 설정은 중요하지만 꿈이 현실화되면서 아이들이 생각도 현실화된다. 등수와 성적은 학창 시절 동안 아이들의 꿈을 향한 일종의 적금 같은 것이다. 빈약한 적금통장(성적)은 아이들의 대학을 결정하고 직업을 결정하고 사회화되는 그룹을 결정한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비슷비슷한 그룹으로 묶인다. 그리고 비슷비슷하게 살게 된다.
그들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이 되고자 했던 꿈들은?
그들이 불면의 시간을 보내며 고민하던 날들은?
모두가 공무원, 모두가 전문직, 모두가 대기업 사원이기를 바라는 시대다. 부모들은 그들의 획일화된 꿈을 위해 허리가 휘도록 학원비를 대야만 한다. 틀에 찍어낸 것처럼 보이는 꿈들. 그리되지 못하면... 차선을 선택하겠지만, 꿈이 획일화되고 정형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각박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살아가는 것. 꿈을 찾는 일, 꿈에 다가가는 것이 버거워진다는 반증일 것이다.
길들여지고 익숙해지는 세상살이. 한때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중학생 때 이광수의 ‘사랑’이라는 책을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하고 무작정 의사의 꿈을 품었다.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인공 닥터 안빈이 말하길 누군가 사랑에 빠지면 혈액 속에 '아우라몬 퓨어'(?) 인가 하는 물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오래된 소설인데... 의학적으로는 근거 없고 허무맹랑할 지라도 나는 어떤 감정에 따라 혈액의 조성이 변한다는 사실에 감탄하였다. 아마도 그날부터 의사를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의사가 되려면 수리적 감각이 있어야 했다. 수학 성적이 중요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이 미적분과 확률통계가 의사의 전문적 의료 행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이다. 환자를 보면서 어떤 방정식을 대입하고 어떤 방법으로 적분을 하는지. 환자들에게 삼각함수와 피타고라스 정의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의사라는 전문직이 되기 위한 기본 배이스로서는 수학이 필수겠지만 의료 행위와의 관련성은 여전히 궁금하다.
이제 그 아이들은 활이 되어 날아갔다. 오래전 인연이라 이미 번호가 삭제된 아이들도 있고, 변경된 아이들도 있고 여전히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은 꿈에 어느 정도 다가갔을까?
세상 속에서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도 그들이 여전히 꿈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본캐와 부캐의 시대이니 밥벌이가 본캐라면 꿈은 부캐가 될 수도 있겠다. 지금의 나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찾고 있다. 진행 중이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무언가를 하기 위한 몸짓. 어딘가에 가둬지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은것. 누군가의 무엇이 아닌 오직 ‘나’로 살기 위해서 여전히 꿈을 품는다.
그 꿈은 폭도 깊이도 두께도 없다.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