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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사라져 가는 것들, 저무는 것들에 소리치고 저항하기/ 딜런 토마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 모든 날 중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한 번도 웃지 않은 날이다.”

- 나콜라스 세바스티안 드 샹포르 -          


서귀포에 위치한 포도뮤지엄에서 기억의 불완전성과 유한함을 통해 생의 본질을 탐구하는 기획전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Perhaps Sunny Days)이 열리고 있다. 노화와 인지 저하를 주제로 노화로 인한 기억의 해체와 재구성, 고립과 고통, 돌롬,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전시에 루이스 부르주아,  로버트 테리엔, 시오타 지하루 등의 작품이 전시 중이라 한다.      


 거대한 청동 '마망'(Maman)의 작가 브루주아의 '밀실 1'은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문짝들, 앙상한 철제 침대, 어지럽게 놓인 유리병과 의료도구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유년 시절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문짝들, 손으로 슬쩍 밀기만 해도 무너질 것만 같은 엉성한 울타리다. 그 안에 아픈 어머니의 기억이 누워있다. 어머니는 널브러진 약병 안에도 존재하고 수많은 의료 기구들 안에도, 삐걱이는 침대 위에도 존재한다.      


시오타의 '끝없는 선'은 책상에 앉아 있는 우리들 머릿속의 생각을 직관적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무수한 실을 엮은 공간을 통해 생명, 삶, 죽음, 기억과 같은 보편적인 기억과 경험에 축적되는 무형의 감정들을 전달한다. 실에 이어진 언어와 문자는 우리의 기억을 온전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혈관성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행복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셰릴 세인트 온지 작가. 어머니의 치매라는 비극적 경험을 명랑함으로 복원한다. 카메라 앞의 늙은 어머니는 다시 아이가 되어 스스로 포즈를 취한다. 새롭게 맞이하는 현실. 비극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비극은 더 이상 비극이 아닌 것이다.     


기억의 불완전함, 생의 유한함 속에 우리는 날마다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간다. 

망각의 속도가 기억을 잠식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누구든 예외 없이..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갓 환갑을 넘기고 떠난 어머니는 치매를 앓아볼 기회조차 없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남겨진 내게는 ‘축복’이다.

나는 그분들의 고통이 내  안에 전이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고

심지어 나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어쩌면 그런 날이 오는 것을.... 만일 그분들이 살아계셨다면... 그분들 보다도 내가 더 견디지 못하였으리라. 참으로 비루하고 비겁한 생각이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들이 세상에 ‘없음’을 애통해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은  본격적인 ‘노화’라는 과정을 겪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늙어볼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무언가에 쫓기듯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내 기억 속의 부모는 그 마지막 시점, 여전히 중년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기억 속 그들을 떠올리고 회상하는 우아함보다 해마다 낡아가는 나의 일상이 두려움으로 먼저 다가온다. 사람의 몸이란 강철도 아니기에 아플 수밖에 없고... 한 사람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뇌는 언제 어느 순간 오작동을 할지 모른다.   작업하다 날려버린 파일들처럼..... 내 안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無)로 돌아가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 Perhaps sunny day > 전시가 가슴에 와닿는다

영문명으로는 어쩌면 해가 비치는 날들인데 우리말로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다. 아름답다는 추상적 의미보다  이미 낡은 고목에 해가 비치는 모습이 연상된 ‘sunny'라는 표현이 더 끌린다.

실제 이 전시의 백미는 100년을 살다가 얼어 죽은 거대한 배롱나무를 영상으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그 나무 앞에서 관람자는 저마다의 노년(언젠가, 받듯이)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딜런 토마스의 시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가 인용된 적이 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

달아나는 태양을 붙잡아 노래했던 격정적인 자들도,

뒤늦게야, 태양이 진다는 슬픈 사실을 알게 되나니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 부분 발췌-          


딜런 토마스가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썼다는 말도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꼭 아버지로 특정되지 않는 세상의 모든 임종을 앞둔 이들, 저물어가는 인생의 밤을 기다리는 이들 모두를 위해 쓴 시일 것이다. 

이 시에 언급되는 ‘노인들이여’를 ‘그대들이여’로 바꾸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들이, 사라져 가는 빛에 분노하고 분노해야 할 이들이 꼭 노인뿐이겠는가? 

 이 시는 저물어가고, 약해지고,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소리치며 저항하고 분노하라는 의미로 보면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와 배치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 늘 아름다운 것은 결코 아닌 )에서 ‘어쩌면 ’ 아름다운 날들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소리치며 저항하며 살아야 한다.


사라져 가는 가치들, 지키지 못한 것들, 부서진 마음들, 조악한 언어로 망쳐버린 관계들,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들....... 아직 다하지 못한 세상의 모든 안타까운 흔적들을 위해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영원히 아름다울 것만 같던  제라늄 꽃이 소리 없이 진다.

수없이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치지 않게 찬란하던 꽃도 어느 순간 꽃잎을 떨구고야 만다.

귀를 기울이면 저항하는 꽃의 외침이 들린다.

사라져 가는 것, 저무는 것에 분노하는..........

그러므로 꽃잎을 떨구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또다시 꽃대를 밀어 올리며

거침없이 붉음을 토해낼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또 어쩌면.........../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사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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