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조용한 그녀는 동굴 같은 북향방으로 침잠하는데

통유리가 있는 방안의 나는 밝음에 밝음을 탐하고 있다

  북향 방            

                                /한강     

봄부터 북향 방에서 살았다


처음엔 외출할 때마다 놀랐다

이렇게 밝은 날이었구나


겨울까지 익혀왔다

이 방에서 지내는 법을


북향 창 블라인드를 오히려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만 켠다


차츰 동공이 열리면 눈이 부시다

약간의 광선에도


눈이 내렸는지 알지 못한다

햇빛이 돌아왔는지 끝내

잿빛인 채 저물었는지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는다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쓰면 책상에 스며들지 않는다

날씨는 기록하지 않는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2024 문학과 사회 수록 


빛이 변하지 않는 북향의 사람이 된 그녀가 블라인드를 내리고 책상 위 스탠드를 켠다.

그리고 어둠에 단어들이 녹지 않게 조금씩 사전을 읽고 투명한 잉크로 일기를 쓴다.

투명한 잉크로  쓴 일기는 책상에 스미지 않는다.     

조용하고 잔잔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기꺼이 북향사람이길 원하는 조용한 검은 사슴 같은 그녀...     

밝은 곳을 탐하지 않는다. 더 밝은 곳. 더 주목받는 곳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향방에, 블라인드를 켜고 안으로 침잠한다

그렇다고 하여 자폐적이지 않다. 단어를 망각하지 않기 위하여 사전을 읽는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조용한 만큼 강하다. 그녀의 조용한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힘이 있다.     


밝은 방에서 사는 일은 어땠던가

기억나지 않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북향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빛이 변하지 않는     


옥탑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온 지 여러 해다. 가장 큰 변화는 언제든 통유리창 너머로 산이 보인다는 것....

나무들의 흔들림과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달빛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한 겨울밤 내리는 눈이 방안을 밝히기도 한다. 

넓은 창이 있으니 어딘지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다. 벽을 향해있던 책상을 정면으로 창을 향하게 바꿔놓았다.

나는 도리어 이 밝음 아래서도.... 책상 위 스탠드를 켜 놓았다.

시인이 북향방에 블라인드를 내려 동굴 같은 어둠 속으로 침 참하는데... 나는 밝음에 밝음을 더하고 있다.     

더 밝음을 탐하고 있다.

막바지 원고 검토를 하느라 책상이 어수선하다.

정리되지 않은 책들... 치우지 않은.....     

내년이면 오래도록 머물렀던 작업실 겸 수업하던 장소에서 나와야 한다.

1미터 9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자작나무(인조) 2그루가 있는 곳.  불을 끄고 돌아오기 전 그 공간을 찬찬히 바라본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그곳에 퇴적되어 있는가.

울음과 웃음이.... 그곳을 드나들던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를 생각한다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 중 어떤 아이들은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 훌쩍 자란 아이들...

그 아이들이 한 여름 나무 같이 자라는 동안

나는 그만큼 고목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저기 책이 있는 그곳에 가면 고향에 돌아간 것 같은 아늑함을 느낀다.

산이 전면에 들어오는 통유리가 있는 옥탑방 작업실과 오래도록 내가 머물렀던 그곳은 분위기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나는 같은 사람인데 어떤 공간에 있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곳.... 나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기억하고 있을 그 공간....

오랜 이웃들이 있는 곳... 여전히 드문드문 아이들의 발걸음이 있는 곳.

아마 그곳을 정리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여전히 많은 책들. 짐들....     그리고 그곳에 남아있는 마음들....


글을 쓰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나는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이 무엇이라고.... 대체 무엇이라고...     

블라인드를 내린 북향방에 유폐될 용기도 없는 내가... 글을 쓴다고...

공모전에 내보낼 작품을 만들었고 이번주는 11월 말 ~12월 초 출간될 도서의 교정을 보느라 바빴다. 신기한 게 교정 볼 때마다 고쳐야 할 것들이 새로 보인다는 것이다.

인쇄기가 돌아가는 중에도 원고를 교정했다는 발자크 생각이 난다.     

문화재단 지원금을 받았다 해도 책을 내는 일은 부담이 된다.... 이번엔 하드커버를 할까 고민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예전대로 할 생각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도 하드커버 표지 별로 없는데... 감히...

혼자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 통유리가 있는 곳이든 자작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이든

나는 쓰고 있다.

왜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목이 되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쉴 새 없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나는 결여와 결핍, 허기가 많은 사람이기에..... 매 순간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한 웅큼의 지푸라기로 돌아가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신데렐라의 마차가 순식간에 호박이 되어버리듯..


새들이 운다

밤새 부는 바람에 창밖의 제라늄들이 추위를 탔으리라.

산이 가을빛으로 물들고 있다.

나는 또 느릿느릿.... 자작나무 2그루가 있는 그곳으로 이동하리라.

아직은 그곳에 머물러도 되니까.....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