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레스트 카에이루
한때 우리는 닥치는 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때 세상은
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 만치 작았다,
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
역사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지 못하고
더러운 먼지를 내뿜어 우리 눈을 속였다
....
전쟁으로 얻은 우리의 전리품, 그건 세상에 대한 깨달음, 세상은
서로 꼭 맞잡은 두 손에 들어갈 수 있으리 만치 크다는 것,
웃으면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는 것,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출판되지 않은 시들 가운데서 > 부분
총구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꽂는 일. 카네이션 혁명
50년 전 포르투갈 독재정권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에게 붉은 카네이션을 나눠줘 ‘카네이션 혁명’이란 이름을 역사에 남게 한 셀레스트 카에이루.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74년 4월 25일은 카에이루 여사가 당시 일하던 식당의 개업 1주년 기념일로, 사장은 직원에게 선물할 카네이션을 준비했다. 하지만 마르셀루 카에타누 당시 총리를 몰아내기 위해 반체제 소장파 장교들을 주축으로 군인들이 거리로 쏟아지며 기념일 행사가 취소됐다.
카네이션을 들고 귀가하던 고인은 우연히 한 군인을 마주쳤는데 “담배가 있느냐”라고 묻자, 카에이루 여사는 갖고 있던 카네이션을 건넸다. 군인이 웃으며 꽃을 받아 소총 총구에 꽂았고, 이후 많은 총구와 전차를 장식한 붉은 카네이션들로 가득했다.
쿠데타는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은 무혈(無血) 봉기로 마무리됐고 40여 년 독재에 마침표를 찍고 포르투갈 첫 민주 선거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독특한 포르투갈 민주화의 역사적 장면은 한 여성의 사소한 행동에서 만들어졌다.
혁명 후 누가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기 시작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여러 언론사가 취재에 나서면서 카에이루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포르투갈에서 카에이루는 “카네이션 여인”으로 불리며 평화 혁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싱글맘’이던 카에이루 여사는 혁명 이듬해 리스본 시의회의 지원을 받아 얻은 리스본 북부의 주택에서 딸, 손녀와 함께 국가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갈군은 성명을 통해 “카에이루는 사소한 몸짓 하나로 포르투갈을 영원히 바꿔놓은 혁명의 상징”이라며 “작은 행동에서 위대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걸 일깨워줬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기사 부분 발췌-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갈수록 잔인해져 가는 세상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기나긴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자국이 이익에 따라 전쟁을 충동질하는 시대에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은 혁명군 기사는 경이롭고 아름다우며 신선했다.
카네이션이 꽂힌 총구로 사람을 겨눌 수는 없다. 누군가를 피 흘리게 할 수 없다.
흔히 카네이션을 어버이날을 상징하는 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포르투갈 무혈 혁명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셀레스트 카에이루. 싱글맘이면서 식당종업원이던 그녀가 퇴근길 군인에게 건넨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가 가져온 찬란한 나비효과. 셀레스트 카에이루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행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폭력과 악이 잠재되어 있지만 누군가의 행동으로 선의 싹이 발아되기만 한다면 폭력과 악을 어떻게든 잠재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총구에 꽂힌 붉은 카네이션 한송이라니..
전차와 총구를 장식한 붉은 카네이션의 행진이라니...
사람들은 붉은 카네이션을 들고 지지하고 혁명군은 피 흘리지 않는 혁명으로 독재를 청산했다.
총이나 칼보다 한 자루 펜의 힘을 이야기한 소녀 말랄라 유샤프 자이, 세상은 피로 얼룩져 있어도 그 피는 꽃으로든 펜으로든, 책으로든, 목소리로든 닦아낼 수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는 일.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는 일은
사소한 그러나 아름다운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 려원
<사람학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