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일인칭단수』를 읽으며 나는 모처럼 일인칭단수가 된다.
『일인칭단수』
무라카미하루키 신간 『일인칭단수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감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읺았다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긴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 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 / <사육제> 중에서
‘일인칭 단수’란 세계의 한 조각을 도려낸 ‘홑눈’이다. 그러나 그 단면이 늘어날수록 ‘홑눈’은 한없이 서로 얽힌 ‘겹눈’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私)는 이미 내가 아니고 나도 이미 내가 아니다. 또한 그렇다. 당신도 더 이상 당신이 아니게 된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루키의 말
하루키의 신간 < 일인칭 단수 >가 < 여자 없는 남자들 > 이후 6년 만에 나왔다. 특유의 미스터리한 세계관과 감성적인 필치, 일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공통점을 지닌 단편 모음집이다.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8편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돌베개에 7
크림 27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51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73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23
사육제(Carnaval) 149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183
일인칭 단수 215
그의 단편들의 첫 문장을 뽑아보면 1편 <돌베개에>서는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로 시작한다. 두 번째 이야기 <크림>에서는 ' 열여덟 살 때 겪은 기묘한 일을, 나는 아는 동생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로 세 번째 이야기 <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의 첫 문장은 ‘버드가 돌아왔다.’ 네 번째 이야기 < 위드 더 비틀스 >에서는 ‘나이 먹으면서 기묘하게 느끼는 게 있다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에서는 ‘먼저 말해두고 싶은데,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여섯 번째 이야기 < 사육제>에서는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 일곱 번째 이야기 < 시나가와 원승이의 고백>에서는 ’ 내가 그 늙은 원숭이를 만난 곳은 군마현 m 온천의 작은 료칸이었다.‘ 여덟 번째 이야기 <일인칭 단수>에서는 ’ 평소 슈트를 입을 기회는 거의 없다.‘로 시작한다.
그는 『 노르웨이의 숲』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의 작품으로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일본의 군조 신인상 수상작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맨 앞표지에 작가의 말을 대신하여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 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 졌다."라고 적혀있다. 불현듯 무언가가 쓰고 싶어서 신주쿠에 있는 기노쿠니야에 가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의 글은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작가로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설령 그를 작가로서 좋아한다 하여도 그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루키는 분명 하루키답다. 그의 나이가 70대라 하여도 (사실 살아가면서 나이를 확인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는 예전의 하루키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의 소설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하여 엄청 의미 있는 일을 벌이다가 극적인 결말을 맺는다기 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정도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쉽게 관계를 맺고 어떤 지속적인 만남 없이 어디론가 흩어져버리는 구조가 많다. 당구공의 만남처럼(만남이 아니라 부딪침) 우연히 툭 부딪히고 특별히 연연하는 감정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문득 기억 속에서 아주 가끔씩 끄집어내는 것. 어떤 사물을 통해서 또다시 떠올려지는 것.
밑줄을 쭉 그어야 할 정도로 철학적인 문장이나 아름다운 문장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툭 던져지는 하루키 다움이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부터 흡인력이 있다. 우리는 모두 일인칭 단수다. 개별적으로는...
그러나 ‘우리’라는 개념으로 묶일 때 더 이상 일인칭이 아니다. 나는 틀림없이 ‘나’이지만 관계 속에서 ‘나’는 일인칭의 ‘나’가 아닌 것이다. 누구의 무엇이지... 오롯이 ‘나’는 아닌 것.
첫 번째 단편 <돌베개에>에는 나와 여자의 대화에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그 사람 좋아해요?” “응 엄청” “굉장히 굉장히 좋아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하지만 그 사람은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야. 아니, 사실은 따로 여자 친구가 있어.”
“그런데 사귀어요?” “ 응. 그 사람은 내 몸이 갖고 싶어 지면 나를 불러내.” 그녀가 말했다.
“전화로 배달시키는 것처럼.”..... 중략.... “ 그래도 부르면 가네요?” “종아하니까? 하는 수 없잖아. 누가 뭐 라건, 가끔은 남자한테 안기고 싶어 지니까.”
“ 사람을 좋아하는 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정신 질환이랑 비슷해.” / p 14-15
나와 여자의 짧은 대화문에서 나는 “그는 나를 불러내, 전화로 배달시키는 것처럼.”이라는 말에서 멈추었다. 어쩌면 오늘날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부합되는 표현이 아닐까. 치킨이나 피자처럼... 사람도 배달 인간이 되는 것. 그걸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을 맞댈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란 모순적인 관계.. 나는 바로 이런 사소한 날카로움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한다.
우리의 육체는 돌이킬 수 없이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면 많은 것이 이미 사라져 버렸음을 깨닫는다. 강한 밤바람에 휩쓸려, 그것들은? 확실한 이름이 있는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이나?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이다. _<돌베개에>/P. 24
두 번째 작품 <크림>
“중심이 여러 개, 아니 때로는 무수히 있으면서 둘레를 갖지 않는 원.” 노인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 중략... “그런 원이 실제로 있나요?”
“ 자네는 혼자 힘으로 상상해야 돼. 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 비로소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 않은 일을 이루어 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의 에센스. 그게 ‘크렘 드 라 크림’이야.”
“모르는 걸 어떻게든 알아내라고. 지금이 중요한 시기거든, 머리와 마음이 다져지고 빚어져 가는 시기니까.” / p 44-45 일부 인용
크림 중의 크림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중심이 여러 개 그러나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떠올려가며.... 머리와 마음을 다져지고 빚어가야 하는 것이다... 하루키는 크림 중의 크림을 얻었을까? 아마도 그는 현자와 같은 노인처럼 여전히... 머릿속에 실체 없는 원을 수없이 그리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P. 48~49
그의 일곱 번째 단편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는 인간 여자를 사랑한 원숭이가 사랑의 방법으로 여자의 이름을 훔친다. 원숭이가 여자의 이름을 훔치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발상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 특히 그것이 이름일 경우.... 시나가와 원숭이가 출몰했다 생각하면 되겠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安寧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_<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P. 203
그의 여덟 번째 작품이면서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작품 <일인칭 단수>에는 우리가 어느 쪽을 선택하였든...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나. 바로 일인칭 단수로서의 나로 실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이 결국은 ‘선택’의 결과물이 아닐까?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 했고. 그것이 사소하든 사소하지 않든 우리의 삶은 그때마다 달라져 왔다. 마치 골목길을 걸어 나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듯....
하루키는 마지막 작품에... 일인칭 단수로 존재하는 ‘나’ 그러나 거울에 비친 ‘나’는 대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 (……)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_<일인칭 단수>. 223~224
하루키의 신간이 서점에서 얼마의 판매 수치를 기록할지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이 책의 판매 수치가 어떠하건. 그것은 독자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출판사의 마케팅 효과일 수도 있으니까. 또한 이 단편집 수록 내용 모두가 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니까. 무조건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하루키가 여전히 ‘하루키스럽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의 글은 여전히 심심한 듯 무심한 듯 하지만 무언가 뾰족한 것들이 나타나 뇌를 각성시키는 마력이 있고, 어딘지 설득력 없어 보이는 억지 설정 같으면서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기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자가 등장하고 여자의 외모가 언급되거나 여자와의 어떤 성적인 관계가 묘사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쩌면 전형적인 오늘날의 사랑방식에 대한 풍자 같은 느낌이어서 거부감도 별로 생기지 않는다.
세상은 어차피 여자들과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여자들과 남자들.... 그들을 통틀어 ‘우리’라 칭한다. 그 안에서 나는 가끔 ‘일인칭단수’로 존재하는 ‘나’를 확인하고 싶다. ‘일인칭단수’로 존재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다. 누구의 무엇도 아닌 ‘나’는 오늘 하루키의 작품을 읽으며 오롯이 ‘일인칭단수’로 존재한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