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비애 / 변신/프란츠 카프카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우리는 언제까지 쓸모 있는 '저것'으로 살아야 하는가?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비애-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5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영업사원 그레고르 잠자가 커다란 갑충으로 변해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왜 벌레가 되었는지 전후 설명 없이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보니’로 그레고르의 변신을 설명한다. 신화나 소설에는 수많은 변신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직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데 아버지는 은행 수위로, 그레타는 가게 점원으로 취직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하숙을 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에 슬퍼하고 먹이를 가져다주거나 방을 치우는 방식으로 돌보지만 점차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다. 방 안으로 몰아넣기 위해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그레고르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벌레로서의 고립은 깊어간다.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온 그레고르 때문에 하숙생들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게 되자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없어져야 할 것으로 인식한다. “더는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요. 우리는 ‘저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는 ‘저것’을 먹여 살리면서 참고 지내는 데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어요. 우리는 ‘저것’을 내쫓아야 해요.” 누구보다도 여동생을 사랑했고 돈을 벌어 음악학교에 보내주려던 ‘오빠’는 여동생에게서 ‘저것’으로 호칭된다. 교회의 탑시계가 새벽 3시를 칠 때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숨을 내쉰다. 바짝 말라붙은 그레고르의 시신은 일하는 할머니의 빗자루에 의해 치워 지고 하숙생들을 내쫓은 가족들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에 부푼다.
카프카는 정상적인 일상 속에 숨어있는 폭력과 야만, 지배자의 비인간적 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구화된 인간의 비애를 여러 작품 들에서 다루고 있는데 특히 ‘변신’에서는 선량한 아들이자 성실한 일꾼이었던 그레고르 잠자가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것을 통하여 부품화 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가족 해체에 대한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가 변신의 매개물로 ‘거대한 갑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벌레’는 유럽에서 유대인을 비하하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는 이유도 있고, 겉껍질은 단단하나 속은 무르고 연약한 벌레의 신체적 특성을 빌어 그레고르를 표현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혹은 사자나 호랑이처럼 강한 동물이 아닌 벌레는 쉽게 짓밟아 죽일 수 있는 만만한 상대를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벌레(갑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오롯이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생계유지를 위해서 ‘쓸모’를 인정받아야 한다. 개인은 타인으로부터 ‘쓸모’를 인정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만한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처럼 사람들은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지만 점점 무덤덤해지고 좀 더 ‘쓸모 있기’를 은연중 강요한다. 비정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자신의‘쓸모’를 입증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도태된다. 그레고르 잠자가 죽게 된 표면적 이유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로 인한 상처지만 내면적으로는 ‘쓸모없음’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소외될 때 느끼는 절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타인에게 ‘누구’로 호칭되지 ‘무엇’으로 호칭되지 않는다. ‘관계’를 이루는 바탕은 ‘쓸모’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이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카프카의 ‘변신’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더 지났음에도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면 벌레로 버려질 수 있다.”는 여전히 충격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수많은 그레고르 잠자들이 오늘도 자신의 ‘쓸모’를 인정받기 위해 거리를 달린다. 부디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쓸모 있는 저것’이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꿈꾸는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