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부탁

그러나 우리는 사소한 일상에 실패한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서평

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부탁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p97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 중에서>

황현산의 산문집 <사소한 부탁>은 불문학자이면서 문학비평가로 살아온 그가 2013년 3월 9일부터 2017년 12월 23일까지 세월호 참사, 탄핵, 문단 비리, 여성 혐오, 표절 등 사회적 이슈들을 시기별, 분야별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고민거리에 대한 황현산식 조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서문에서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의 시 ‘밭 가는 해골’을 인용하고 있다. 죽음을 통해 비로소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났으니 혼이라도 편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죽음의 세계, 허무의 세계에 들어선 해골에게 영원한 휴식이라는 약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라에서 “거친 땅의 껍질을 벗겨야 하며” 피 흐르는 맨발로 보습을 밀며 노역해야 한다. 죽음 이후에도 영원히 험한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평생 뼈 빠지게 고생하며 살아왔다면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평생 다른 이를 착취하며 악하게 살아온 이는 후대가 아니라 당대에 벌을 받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정해진 공식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때 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죽어서까지 밭 가는 해골이 되지 않으려면 고민에 대한 답을 어디에서든 찾아야 한다.

문학은 이러한 삶에 대한 고민들의 답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황현산은 말한다.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추상적이지만 문학은 사회의 물음에 대한 고뇌의 결과물이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평생을 문학의 밭을 머슴처럼 일구다 죽었고 어쩌면 죽어서도 머슴새가 되어 어스름 저녁과 어스름 새벽에도 여전히 밭을 갈고 있는지 모르겠다. 밭 가는 해골과 그의 차이점은 기꺼이 그리고 자진해서 문학의 밭을 갈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다른 길’과 ‘ 작은 더 작은 현실’이라는 글을 통해 플로베르의 ‘일물 일어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일물 일어설은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두 알의 모래나 두 마리 파리나 두 개의 손, 두 개의 코는 없듯이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단 몇 줄의 문장으로 뚜렷이 개별화하고 다른 모든 인물이나 사물과 구별할 수 있게 표현하라.”는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 ‘일물 일어설’을 ‘식민지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설명한다. 근대 세계에서 하나의 국가가 식민지화되기 전에 먼저 문명이 자연을, 이론이 삶과 경험을 식민지화한다. 근대화와 맞물린 식민화는 모든 것을 단순화, 표준화하고 편의에 따라 재단하고 배열해버린다. 따라서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하려는 ‘일물 일어설’은 자연과 삶의 복원이자 존재와 사물로서의 지위 확보라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타오르는 불꽃 하나와 벌판의 나무 한 그루를 묘사하려면 그 불꽃과 나무가 다른 어떤 나무 다른 어떤 불꽃과 더 이상 닮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시각에 질적인 변화가 올 때까지 그 사물을 지켜보라는 의미다. 대상을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한마디 말은 기존의 말들과 관념을 지워버리고 익숙함을 전복시키는 말이 된다. 낯익은 것이 낯선 것이 된다. 한 나무가 다른 나무와 더 이상 닮지 않을 때 그 불꽃과 나무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불꽃들과 나무의 타자성을 드러내며 오직 자신만의 언어를 얻어내는 것이다. 빈약한 내용과 죽은 지식을 실어 나르는 낡은 연상을 청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소위 우리가 지식이라 말하는 것은 어쩌면 익숙한 것들을 답습하고 그 결과 생산된 진부한 것들을 재포장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겉 포장지만 바꾼 그저 그런 것들의 집합체를 지식이라 맹신한 것은 아니었을지.

바람은 늘 살랑살랑 부는 게 아닌데 무의식적으로 살랑살랑 분다는 표현에 익숙한 우리들은 이미 스쳐간 바람 하나도 자신만의 언어로 잡아내지 못한다. 사고의 경직성이고 완고 함이고 진부 함이다. 길들여지고 익숙한 것들을 되풀이하는 무의식의 반복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사소한 부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사소한 일상에 실패한다. 어렵고 중요한 것보다 정작 사소한 것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황현산의 ‘사소함’을 생각하다 문득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떠올랐다.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서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즐거운 편지 / 황동규 -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사랑을 사소하다고 말하고 그 사랑도 언젠가는 그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사랑이 계속되리라는 반어적 표현이다. 특히나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은 시인의 말처럼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이 사라진다면 우리들의 삶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말하는 ‘사소한 일’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간절한 일인 것이다. 결국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 황동규가 시에서 말하고 있는 ‘사소함’은 같은 의미다. 일상의 사소한 삶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길을 잃고 헤매는지 그는 너무도 잘 알기에 사실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부탁’을 ‘사소한 부탁’이라는 반어적 표현을 써가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땅 위에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는 루쉰의 말을 사소함에 적용해보면 ‘사소함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에는 의미 없어 보였지만 개별화된 사소함들이 모여 의미 있는 길을 만든 것이다.’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변화들을 감지하고, 간절한 사소함을 품은 채 살아간다면 이미 세상을 떠나 저세상 어딘가 문학의 밭 끝자락에 서있을 황현산 선생님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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